앞 회
제111회 등애가 강유를 지혜로 이기고 제갈탄이 의롭게 사마소를 친다
한편, 강유가 퇴각해 종제에 둔병하고 위나라 군이 적도성 밖에 둔병한다. 왕경이 진태와 등애를 영접해 입성한 뒤 포위를 풀어준 것을 삼가 사례하며 연회를 열어 대하고 삼군( 전체 군대 )을 크게 포상한다. 진태가 등애의 공을 위나라 군주 조모에게 신주申奏( 임금 에게 말씀을 올림 )한다. 조모가 등애를 '안서장군 가절영호동강교위'로 봉해 진태와 함께 옹주와 양주 등지에 둔병하게 한다. 등애가 조모에게 표를 올려 성은에 감사한 뒤 진태가 등애에게 연회를 베풀어 축하하며 말한다.
"강유가 한밤에 달아난데다 그 힘이 이미 바닥났을 테니 감히 다시는 나오지 못할 것이오."
등애가 웃으며 말한다.
"내가 보기에 촉나라 군이 기필코 다시 나올 것인데 그 까닭이 다섯 가지는 되오."
진태가 그 까닭을 물으니 등애가 말한다.
"촉나라 군은 비록 퇴각하였으나 마지막까지 승리의 여세가 남았지만 아군은 약패弱敗( 패배 )한 실정이니 그들이 반드시 출병할 첫번째 까닭이오. 촉나라 군은 모두가 제갈공명의 교연教演( 교련 / 훈련 )을 받아서 정예한 병력이고 조견調遣( 군대의 파견 / 배치 )이 용이하 지만 아군은 수시로 교체되고 훈련도 충분하지 못하니 그들이 다시 출병할 반드시 두번째 까닭이오. 촉나라 사람들은 배를 타고 움직이 는 때가 많지만 아군은 모두 육지에서 움직여 그 노고가 같지 않으니 그들이 반드시 출병할 세번째 까닭이오. 적도, 농서, 남안, 기산 이 들 네 곳은 모두 수전守戰( 방어 전투 / 방어전 )을 치루는 곳이라서 촉나라 군이 성동격서, 지남공북( 남쪽을 치는 척하면서 북쪽을 공격 함 )이라도 하면 아군은 병력을 분산해 지켜야 할 것이오. 촉나라 군이 한데 합쳐서 오면 그들의 1분으로 아군의 4분을 감당할 수 있으 니 그들이 반드시 출병할 네번째 까닭이오. 만약 촉나라 군이 남안과 농서에서 온다면 강인들의 곡식을 취해 군량으로 삼을 수 있고 기산으로 출병한다면 그곳의 보리를 군량으로 삼을 수 있으니 이것이 그들이 반드시 출병할 다섯번째 까닭이오."
진태가 탄복한다.
"공깨서 적병을 귀신처럼 헤아리고 있으니 촉나라 군 따위야 무엇이 걱정스럽겠소!"
이에 진태가 등애와 더불어 망년지교忘年之交( 나이 차이를 넘어선 교제 )를 맺는다. 등애가 곧 옹주와 양주 등지의 군대를 매일 조련한 다. 곳곳의 애구( 군사 요충지 )마다 모두 영채를 세워 적군의 기습을 방비한다.
한편, 강유는 종제에서 크게 연회를 베풀어 여러 장수를 불러모아 위나라 정벌을 상의한다. 영사令史( 문서 사무를 맡은 관리 ) 번건이 간한다.
"장군께서 누차에 걸쳐 출병하셨지만 여태 전승( 완전한 승리 )을 거두지 못하다가 근자에 도서의 싸움에서 위나라 사람들이 장군의 위 명을 두려워하게 만들었습니다. 무슨 까닭으로 다시 출병하려 하십니까? 만일 승리를 거두지 못하면 앞의 공적이 모조리 무너질 것입니 다."
"그대들은 위나라가 땅이 넓고 사람이 많아 쉽게 정벌할 수 없는 줄로만 알고 있소. 그러나 위나라를 공격하는 데 있어서 승리할 다섯가 지 까닭이 있는 것을 모르는구려."
사람들이 물으니 강유가 답한다.
"그들은 도서의 싸움에서 한번 크게 패해 예기가 모조리 꺾였소. 아군이 비록 퇴각하였으나 여태 손실이 없었으니 이제 만약 진병( 진 군 )하면 승리할 첫번째 까닭이오. 아군이 배를 타고 진병하면 지치지 않을 것이나 적군은 육로로 올 테니 아군이 승리할 두번째 까닭이 오. 아군은 오랜 기간 훈련을 쌓았지만 적군은 모두 오합지졸이고 아직 법도도 없으니 아군이 승리할 세번째 까닭이오. 아군이 기산에서 나가면 가을 곡식을 거둬서 군량으로 삼을 수 있으니 아군이 승리를 거둘 네번째 까닭이오. 적군이 곳곳에서 수비를 하고 있으나 그들의 군도軍刀( 군용 도검 / 무력 / 군사력 )가 나눠져 있고 아군은 한데 모여서 갈 것이니 적군이 어찌 서로 구원하겠소? 이것이 아군이 승리 할 다섯번째 까닭이오. 이 기회에 위나라를 정벌하지 읺으면 다시 언제를 기다려야겠소?"
하후패가 말한다.
"등애가 비록 젊다고 하나 그 기모機謀( 계략 )가 심원하오. 근자에 안서장군의 직위에 봉해져서 틀림없이 곳곳애서 준비할 테니 지난날 과 같지 않을 것이오."
강유가 소리높여 말한다.
"내가 어찌 그 따위를 두려워하겠소! 여러분은 타인의 예기를 높이고 자기의 위풍을 낮추지 마시오! 내 뜻은 이미 결정됐소. 반드시 농서 를 선취하겠소."
사람들이 감히 더 이상 간언하지 못한다. 이에 강유가 스스로 선두 부대를 이끌고 장수들더러 뒤따라 진군하라 한다. 촉나라 군이 모조 리 종제를 떠나 기산으로 달려간다. 초마( 정찰병 )가 위나라 군이 이미 기산에 아홉 개의 영채를 세운 것을 보고하지만 강유가 믿지 않 고 몇 기룰 이끌고 높은 곳에서 바라본다. 과연 기산의 아홉 개 영채가 마치 한 마리 기다란 뱀과 같이 그 머리와 꼬리가 서로 돌보는 형 세를 이루고 있다. 강유가 좌우의 사람들을 뒤돌아보며 말한다.
"하후패의 말이 과장이 아니구나. 이들 영채의 형세가 절묘하니 오로지 내 스승 제갈 승상만이 능히 이렇게 할 것이다."
곧 본채로 돌아와 여러 장수를 불러 말한다.
"위나라 군이 이미 준비를 마쳤소. 그들은 내가 반드시 올 것을 안 것이오. 내가 보기에, 틀림없이 등애가 이곳에 있소. 그대들은 아군의 깃발로 허장성세를 펼쳐, 이 골짜기 입구에 영채를 세우고, 매일 1백여 기에게 명해 경계를 하러 나가게 하고 한번 경계를 나갈 때마다 한번씩 갑옷을 갈아 입게 하시오. 깃발을 청, 황, 적, 백, 흑의 다섯 방위에 따라 마련해 깃발도 매번 바꾸시오. 나는 비밀리에 대군을 거느리고 동정을 지나서 남안을 습격하러 가겠소."
곧 포소더러 기산 골짜기 어귀에 주둔하라 하고 강유가 직접 대군을 이끌고 남안으로 진군한다.
한편, 등애는 촉나라 군이 기산으로 나온 것을 알고 재빨리 진태와 더불어 영채를 세워 대비했다. 그런데 촉나라 군이 며칠이 지나도록 싸움 걸러 오지 않고 매일 다섯 차례 초마( 정찰 기병 )들이 영채를 나와서 십리 혹은 2십 리를 나갔다가 돌아가는 것이다. 등애가 높은곳을 올라 살펴보더니 허겁지겁 막사로 들어와 진태에게 말한다.
"강유가 이곳에 있지 않으니 틀림없이 동정을 취해 남안을 습격하러 간 것이오. 영채를 나오는 초마들은 몇 필 되지 않는데 갑옷을 갈 아입고 오고가며 초탐( 정찰 / 경계 )하느라 모두 지쳐 있을 것이고 주장( 지휘관 )은 무능한 자가 틀림없소. 진 장군께서 1군을 이끌고 공격하면 그 영채를 깨뜨릴 수 있소. 촉나라 영채를 깨뜨린 뒤 곧 군을 이끌고 동정을 지나는 길을 습격해 먼저 강유의 후미를 끊으 시오. 나는 앞장서서 1군을 이끌고 남원을 구원하고 곧바로 무성산으로 가겠소. 무성산 꼭대기를 선점하면 강유는 틀림없이 상규로 갈 것이오. 상규에 골짜기가 있으니 하나 이름해 단곡인데 땅이 협소하고 산이 험준해 매복하기 아주 좋소. 그가 무성산을 치러 오면 나는 2개 군을 단곡에 먼저 매복해 강유를 격파할 수 있을 것이오."
진태가 말한다.
"내가 농서를 2, 3십년 지켜왔으나 아직까지 이렇게 지리를 잘 알지 못했소. 공의 말씀은 참으로 신산神算( 신통한 계략 )이오. 공은 어서 떠나시오. 나도 이곳의 영채를 공격하러 가겠소."
이에 등애가 군을 이끌고 성야星夜( 한밤중 / 별이 총총한 밤 )에 길을 재촉해 곧바로 무성산에 이른다. 영채를 세운 뒤 촉나라 군이 아직 오지 않자 아들 등충과 장전교위 사기에게 명해 각각 병사 5천을 이끌고 먼저 단곡으로 가서 매복하라 하고 이렇게저렇게 지시한 다. 두 사람이 계책을 받고 떠난다. 등애가 언기식고偃旗息鼓( 깃발을 누이고 북소리를 내지 않음 )를 명하고 촉나라 군을 기다리게 한다 .
한편, 강유는 동정을 지나 남안으로 오다가 무성산 앞에 이르러 하후패에게 말한다.
"남안 가까이에 산이 하나 있는데 이름해 무성산이오. 먼저 점령하면 남안을 빼앗을 수 있는형세가 될 것이오. 다만 등애가 지모가 뛰 어나니 반드시 먼저 방비해야겠소."
이렇게 우려하는데 갑자기 산 위에서 한차례 포성이 울리더니 함성이 크게 진동하고 북과 피리 소리가 일제히 울리며 온갖 깃발이 사방 에서 일어서는데 모두가 위군이다. 중앙에서 바람에 나부끼는 황색 깃발에 크게 "등애"라는 글자가 쓰여 있다. 촉군이 크게 놀란다. 산 위 여기저기서 정병( 정예병력 )이 산 아래로 달려드니 그 기세를 막지 못하고 촉나라 선두 부대가 대패한다. 강유가 급히 중 군의 인마를 이끌고 구원하러 갔을 때 위군은 이미 퇴각했다. 강유가 곧바로 무성산 아래로 가서 등애에게 싸움을 걸지만 산 위 의 위나라 군은 전혀 내려오지 않는다. 강유가 병사들을 시켜 저녁까지 욕을 퍼붓다가 비로소 군대를 물리려 하자 산 위에서 북과 피리 가 일제히 울린다. 그러나 위나라 군이 내려오는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강유가 산을 올라 충살衝殺( 들이쳐서 죽임 )하려 하나 산 위에 서 포석砲石( 포로 쏘는 돌 )을 쏘는 것이 몹시 맹렬해 전진할 수가 없다. 3경까지 지키다가 돌아가려 하자 다시 산 위에서 북과 피리가 울린다. 강유가 병사들을 이동시켜 산을 내려가 영채를 세워 주둔하게 한다. 병사들을 시켜 나무와 돌을 운반해 영채를 세우려 하자 산 위에서 북과 피리가 다시 울린다. 이번에는 위나라 군이 갑자기 달려든다. 촉나라 군이 크게 혼란해 서로 짓밟으며 이전의 영채로 후퇴한다.
다음날, 강유가 병사들을 시켜 군량과 수레, 병장기를 무성산까지 운반한다. 이것들을 한줄로 연결함 으로써 영채를 세워 군대를 주둔시 킬 계책이다. 이날밤 2경에 등애가 5백 인에게 각자 횃불을 들고 양 갈래로 산을 내려가 촉나라의 수레와 병장기에 방화하게 한다. 양군이 밤새 혼전을 벌여 결국 촉나라 군이 영채를 세우지 못한다. 강유가 다시 군을 이끌고 퇴각해 하후패와 상의한다.
"남안을 아직 빼앗지 못했으니 상규를 먼저 취해야겠소. 상규는 곧 남안의 군량을 저장하는 곳이라 상규를 빼앗으면 남안은 저절로 위태 로울 것이오."
곧 하후패를 무성산에 남겨두고 강유가 정병과 맹장을 모조리 이끌고 상규를 치러 간다. 도중에 하룻밤을 자고 날이 밝아 살펴보니 산세가 좁고 험준한데다 도로가 기구( 구불구불함 )해 향도관( 길을 안내하는 관리 )에게 묻는다.
"이곳의 지명이 무엇이오?"
"단곡段谷입니다."
강유가 크게 놀란다.
"그 이름이 불길하구나. 단곡段谷( 층계, 조각 단段 골짜기 곡 谷 )은 단곡斷谷( 끊을 단斷 골짜기 곡谷 )이오. 적군이 그 골짜기 어귀를 끊는다면 어찌하겠소?"
이렇게 멈칫하는데 선두부대에서 누군가 달려와 보고한다.
"산 뒤에 구름먼지가 크게 일어나니 복병이 있음에 틀림없습니다."
이에 강유가 급히 퇴각을 명하는데 사기와 등충이 이끄는 두 개 부대가 달려나온다. 강유가 싸우면서 달아나는데 앞쪽에서 함성이 크게 울리며 등애가 군을 이끌고 달려든다. 3로( 3개 방면 )로 협공하니 촉나라 군이 대패한다. 다행히 하후패가 군을 이끌고 달려오자 위 나라 군이 퇴각한다. 하후패가 강유를 구하니 강유가 다시 기산으로 나가려 하는데 하후패가 말한다.
"기산의 영채는 이미 진태에게 타파되어 포소가 전사하고 영채의 인마가 모두 한중으로 퇴각했소."
강유가 감히 동정으로 가지 못하고 급히 산 속 외진 길을 따라 회군한다. 그 뒤를 등애가 급히 추격하자 강유가 병사들더러 전진하라 하 고 스스로 후미를 엄호한다.
이렇게 가고 있는데 홀연히 산속에서 1군이 돌출하니 바로 위나라 장수 진태다. 위나라 군이 일제히 함성을 지르며 강유를 해심垓心( 포 위의 한 가운데 )에 빠뜨린다. 강유가 시람도 말도 지친 채 좌충우돌하지만 탈출하지 못한다. 탕구장군 장의가 강유의 포위됨을 듣고 수 백 기를 이끌고 중위重圍( 겹겹으로 포위함 )를 뚫고 들어가니 강유가 덕분에 급히 탈출한다. 그러나 장의는 위나라 병사들의 난전亂箭( 한곳으로 날아오는 대량의 화살 )을 맞고 전사하고 강유는 중위를 탈출하여다시 한중으로 돌아간다. 장의가 충용하게 왕사王事( 국왕의 명령에 의한 공적 업무 )를 위해 죽저 이에 강유가 감동해 후주에게 표를 올려 그 후손을 돕게 한다. 이때 촉나라 장졸들 다수가 전사 한 것이 모두 강유의 죄로 귀책된다. 제갈 무후가 가정의 전투 뒤에 책임을 졌던 옛 사례를 강유가 본받아 후주에게 표를 올려 스스로를 후장군으로 강등해 대장군의 업무를 행한다.
한편, 등애는 촉나라 군이 모두 퇴각하자 진태와 더불어 연회를 베풀어 축하하고 삼군( 전체 군대 )을 크게 호궤한다. 진태가 조정에 표 를 올려 등애의 공을 알리니 사마소가 사자에게 절부( 사자에게 주는 신임의 증표 )를 주어서 등애를 찾아가서 그에게 관작( 벼슬 )을 더 하고 인수印綬 (관직을 나타내는 도장과 도장을 매는 끈 )를 하사한다. 등애의 아들 등충도 정후亭侯로 봉한다. 이때 위나라 군주 조모가 정원 3년을 감로 원년으로 개원한다. 사마소가 스스로 천하병마대도독이 되고 출입할 때마다 언제나 철갑을 두르고 말을 탄 장수 3천 인 으로 하여금 앞뒤를 족옹簇擁( 떼지어 에워쌈 )해 호위하게 한다. 일체의 사무를 조정에 상주하지 않고 상부相府( 재상의 관저 )에서 처리한다. 이로부터 늘 찬역할 마음을 품는다.
그의 심복 가운데 가충 '공려'는 옛 건위장군 가규의 아들로서 소하부장사의 직위에 있다. 가충이 사마소에게 말한다
"주공께서 대권을 장악하셨지만 사방의 인심이 안정되지 않았습니다. 우선 염탄한 뒤 서서히 대사를 도모하시지요."
"나도 그러려고 했소. 그대는 동쪽으로 가서 출정하는 병사들을 위로한다는 명분으로 소식을 캐어보시오."
가충이 명을 받고 곧바로 회남으로 가서 진동대장군 제갈탄을 만나러 들어간다. 제갈탄은 공휴라고 불리는데, 낭야의 남양사람으로 무후 제갈공명의 족제 族弟이다. 예전부터 위나라에서 벼슬을 했으나 무후가 촉나라의 승상이 된 까닭에 제갈탄은 중용되지 못했다. 그뒤 무후가 신망( 사망 )하니 제갈탄이 중요직책을 역임하고 고평후에 봉해져 양회 兩淮(회남과 회북)의 군마를 통솔한다. 이날 가충이 군대를 위로한다는 핑계로 회남에 이르러 제갈탄을 만난다. 제갈탄이 연회를 베풀어 대한다.
술이 어느 정도 취하자 가충이 제갈탄을 도발한다.
"근래에 낙양의 제현 諸賢이 모두 주상이 유약해 군주의 지위를 감당할 수 없다고 여기오. 사마 대장군은 삼대에 걸쳐서 국정을 보필하고 공덕이 하늘에 닿아 가히 위나라의 법통을 선양 받을 만하오. 공의 뜻은 어떠하신지 모르겠소."
제갈탄이 크게 노해 말한다.
"그대는 가예주의 아들로서 대대로 위나라에서 녹을 먹었거늘 어찌 감히 이런 난언을 내뱉는 것이오!"
가충이 사과한다.
"저는 다만 다른 이의 말씀을 전한 것뿐이오."
제갈탄이 말한다.
"조정에 어려움이 닥친다면 나는 마땅히 죽음으로써 보답하겠소."
가충이 아무 말도 하지 못한다. 다음날 작별을 고하고 사마소를 만나 그 일을 자세히 말하니 사마소가 크게 노한다.
"쥐새끼가 어찌 감히 이러냐!"
"제갈탄이 회남에서 인심을 깊이 얻어 먼훗날 우환이 될 것이니 어서 제거하십시오."
사마소가 곧 몰래 밀서를 양주자사 악침에게 보낸다 . 동시에 사자에게 조서를 줘서 제갈탄에게 보내 제갈탄을 조정으로 불러 사공司 空의 직위에 앉히겠다고 한다. 제갈탄이 조서를 받고 이것이 가충의 고변( 반역의 고발 ) 때문임을 알아차리고 곧 사자를 고문하니 사자 가 말한다.
"이 일은 악침도 알고 있소."
"그가 어떻게 알게 되었냐?"
"사마 장군이 이미 사람을 양주로 보내 밀서를 악침에게 주었소."
제갈탄이 크게 노해 좌우에게 호통쳐서 사자를 참하고 곧 부하 병사 1천을 일으켜 양주로 달려간다. 남문에 이를 즈음에 성문은 이미 닫혔고 적교吊橋( 해자를 사이에 두고 성문과 외부를 연결하는 다리 )는 끌어올려졌다. 제갈탄에 성 밑에서 문을 열라 외치지만 성 위에 서 아무도 회답하지 않는다. 제갈탄이 크게 노한다.
"악침 필부놈아! 어찌 감히 이러냐!"
곧 장졸들을 시켜 성을 공격한다. 제갈탄 수하의 기마병 십여 명이 말에서 내려 해자를 건너 몸을 날려 성을 오르더니 병사들을 내쫓고 성문을 활짝 연다. 이에 제갈탄이 군을 이끌고 성으로 들어가 바람이 부는 방향으로 불을 지르니 악침의 집까지 거세게 번진다. 제갈 탄이 검을 들고 누각을 올라가 크게 꾸짖는다.
"너의 부친 악진은 지난날 위나라의 큰 은혜를 받았다! 보본報本( 은혜를 갚고 근본을 돌아봄 )할 생각은 않고 도리어 사마소를 따른단 말이냐!"
악침이 미처 답하지 못하고 제갈탄에게 살해된다. 한편으로 사마소의 죄를 꾸짖는 표를 쓰고 이를 사자에게 주어 낙양으로 들어가 천자 에게 상주하게 하고 또 한편으로 회남과 회북의 둔전屯田( 병졸이나 백성을 동원해 황무지를 개간하는 것 )하는 호구戶口 십만 남짓과 아울러 양주에서 새로 항복한 병사 4만여를 크게 모아서 진군을 준비한다. 또한 장사長史( 고위 관료의 보좌관의 일종 ) 오강을 시켜 아들 제갈정諸葛靚을 오나라에 인질로 보내 구원을 요청한다. 오나라와 군대를 합쳐서 기필코 사마소를 토벌하려는 것이다.
이때 동오의 승상 손준이 병사하고 그의 종제 손침이 국정을 보좌하고 있었다. 자통이라 불리는 손침은 사람됨이 흉포해 대사마 등란, 장군 여거, 왕돈 등을 살해하니 그가 비록 총명하다고 하지만 막무가내다. 이때 오강이 제갈정을 데리고 석두성에 이르러 손침을 만나러 들어간다. 손침이 사연을 물으니 오강이 말한다.
"제갈탄은 촉한의 제갈 무후( 제갈공명 )의 족제입니다. 지난날 위나라를 섬겼으나 이제 사마소가 기군망상欺君罔上( 임금을 기만함 )하 며 군주를 폐하고 권력을 농단하니 그가 군대를 일으켜 토벌하려 했습니다. 그러나 힘에 부친 까닭에 귀순을 청하러 일부러 찾아온 것입 니다. 아무런 보증이 없다 하실까 참으로 걱정해 친아들 제갈정을 인질로 보내는 것입니다. 삼가 비라옵건대 군대를 내어서 도와주십 시오."
손침이 그 요청을 받아들여 곧 대장 전역과 전단을 주장主將으로 삼고, 우전을 합후合後( 뒤쪽의 호위 / 후위 )로, 주이와 당자를 선봉으 로, 문흠을 향도鄉導( 길을 안내하는 사람 )로 삼아 병력 7만을 일으켜 3대( 세 개 부대 )로 나누어 진군한다. 오강이 수춘으로 돌아와 제갈탄에게 알린다. 제갈탄이 크게 기뻐하며 곧 진병陳兵( 군대를 포진함 )해 준비한다.
한편, 제갈탄의 표문이 낙양에 이르자 사마소가 이를 보고 크게 노해 직접 토벌하러 가려고 한다. 가충이 간한다.
"주공께서 부형( 아버지와 형 )의 기업基業( 토대가 되는 사업 / 국가의 정권 )을 이어받았지만 그 은덕이 아직 사해( 천하 )에 미치지 않 았는데 이제 천자를 버려두고 가셨다가 만약 하루 아침에 변고가 생김다면 후회한들 어찌하시겠습니까? 태후와 천자께 함께 출정할 것을 주청해 걱정거리를 없애는 것만 못합니다."
사마소가 크게 기뻐한다.
"이 말이 참으로 내 뜻과 같소."
곧 입궐해 태후에게 주청한다.
"제갈탄이 모반하니 신과 문무 관료가 토의를 마쳤습니다. 청컨대 태후께서 천자와 함께 어가를 타고 친히 정벌하심으로써 선제께서 남 기신 뜻을 이으소서."
태후가 두려워서 이를 따를 뿐이다. 다음날 사마소가 위나라 군주 조모에게 길을 떠날 것을 청한다. 조모가 말한다.
"대장군께서 천하의 군마를 모두 거느려 마음대로 조견調遣( 군대 등의 배치 / 동원 )할 수 있거늘 하필 짐이 직접 가야겠소?"
"그렇지 않습니다. 지난날 무조( 조조 맹덕 )께서 사해를 종황하시고 문제( 조비 )와 명제( 조예 )께서 우주를 포괄하는 뜻과 팔황八荒( 천하 )을 병탄하는 마음을 지녀서 무릇 큰 적과 마주치면 반드시 스스로 가셨습니다. 폐하께서 마땅히 선군先君( 선대의 제왕 / 선조 )들을 본받아 고얼故孽( 오랜 적수 )을 소탕하셔야지 어찌 두려워하십니까?"
조모가 위세에 눌려서 어쩔 수 없이 따른다. 사마소가 곧 조서를 내려 두 도읍의 병사 26만을 모조리 일으킨다. 진남장군 왕기를 선봉으 로, 안동장군 진건을 부선봉으로, 감군 석포를 좌군으로, 연주자사 주태를 우군으로 삼아, 어가를 보호하며, 호호탕탕浩浩蕩蕩하게 회남 으로 내달려오니 동오의 주이가 군을 이끌고 대적한다. 양쪽 군대가 전열을 갖추자 위나라 군중에서 왕기가 출마하고 주이가 맞서러 나온다. 3합을 못 싸우고 주이가 패주하니 당자가 출마하지만 역시 3합을 못 싸우고 크게 져서 달아난다. 왕가가 군대를 이끌고서 엄습하 니 오나라 군이 대패해 5십 리를 퇴각해 영채를 세우고 수춘성 안으로 알리러 들어간다. 제갈탄이 휘하의 정예 병사들을 이끌고 문 흠과 두 아들 문앙과 문호, 그들 휘하의 웅병( 강력한 군대 ) 수만과 합류해 사마소와 맞서러 온다.
방금 오나라 군대의 예기가 추락했는데
위나라 장수가 강병을 이끌고 오는구나
승부가 어찌될지 모르겠구나. 다음 회에 풀리리다.
다음 회
"무릇 천리마 하루 천리를 가지만 느린 말도 열흘이면 역시 간다 夫驥一日而千里, 駑馬十駕, 則亦及之矣" (순자 荀子)
나관중 羅貫中이 쓰고 모종강 毛宗崗이 개수한 삼국연의 三國演義 원본을 한문-한글 대역 對譯으로 번역해봤습니다.
2009년부터 7년간 번역해 제 블로그에 올린 걸 홈페이지로 만들었습니다.
정만국(daramzui@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