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문삼국지 原文三國志

앞 회

제66회 관운장이 칼 한자루 차고 모임에 가고 복황후가 순국한다

    한편 손권이 형주를 되찾으려 하자 장소가 계책을 바친다.

    “유비 劉備가 크게 의지하는 이는 제갈량입니다. 지금 그 형 제갈근 諸葛瑾이 지금 여기 오 吳에서 벼슬하는데 어찌 제갈근의 노소 老小 를 잡아가두고 그를 서천에 들아가게 해서 그 아우에게 고해 유비로 하여금 형주 荊州를 떼어주게 시키지 않으시겠습니까?돌려주지 않으면 그 누가 우리집안 노소에게 미칠 것이다, 라고 하면, 제갈량은 동포의 정을 생각해 반드시 응낙할 것입니다.”

    “제갈근은 성실한 군자인데 어찌 차마 그 노소를 구류하겠소?”

    “그에게 이것은 단지 계책일 뿐이라 밝히시면 자연히 방심할 것입니다.”

    손권이 이를 따라서 제갈근의 노소를 거짓으로 부중에 가둔다. 한편으로 글을 다듬어 써서 제갈근을 서천으로 보내니 불과 며칠에 성도 에 이르러 먼저 사람을 시켜 현덕에게 알린다. 현덕이 공명에게 묻는다.

    “지금 형이 이렇게 온 까닭이 무엇이겠습니까?”

    “형주를 찾으러 왔을 뿐입니다.”

    “어떻게 답해야겠습니까?”

    “다만 이렇게 이렇게 하십시오.”

    계책을 정한 뒤 공명이 성곽을 나가서 제갈근을 맞이한다. 사택으로 가지 않고 바로 빈관으로 들어가 인사를 마치자 제갈근이 목놓아 크 게 운다. 제갈량이 묻는다.

    “형장께서 무슨 일이 있다면 말씀하시지, 무슨 까닭에 슬프게 우십니까?”

    “우리 일가 노소가 다 죽게 되었네!”

    “보나마나 형주를 돌려주지 않아서겠지요? 아우 때문에 형장의 노소를 잡아가두니 아우의 마음이 어찌 편안하겠습니까? 형은 우려하지 마십시오. 제게 계책이 있으니 곧 형주를 돌려주겠습니다.”

    제갈근이 크게 기뻐하며 즉시 공명과 함께 현덕을 만나 손권의 서신을 바친다. 현덕이 다 읽더니 노해서 말한다.

    “손권은 그 누이를 내게 시집보내더니 내가 형주에 부재한 틈을 타서 결국 누이와 아들을 데려갔으니 정리 情理(인정과 도리)를 따져볼 때 용납할 수 없소! 내 마침 서천의 병력을 크게 일으켜 강남 江南으로 쳐내려가 내 한을 갚고자 하거늘 도리어 형주를 돌려달라 찾아올 줄이야!”

    공명이 소리내 울며 바닥에 엎드려 말한다.

    “오후 吳侯께서 형장의 노소를 잡아가둬 만약 돌려주지 않으면 제 형의 전가족이 살륙되옵니다. 형이 죽고 어찌 저 홀로 살겠습니까? 바 라건대 주공께서 제 체면을 봐서라도 형주를 동오에 돌려줘서 제 형의 사정을 살펴주십시오!”

    현덕이 거듭 응하지 않는데 공명이 오로지 울며 부탁할 뿐이다. 현덕이 서서히 입을 연다.

    “군사의 체면을 봐서 형주의 절반을 떼어서 돌려주겠소. 장사,영릉,계양의 3군 郡을 주겠소.”

    “기왕에 윤허하셨으니 바로 운장에게 편지를 써서 3군을 떼어주라 명하십시오.”

    “자유께서 그곳에 가시거든 반드시 좋은 말로 내 아우에게 부탁하시오. 내 아우의 성미가 열화 같아서 나도 그를 두려워하오. 절대 조심하시오.”

    제갈근이 서찰을 구해 현덕에게 인사하고 공명과 헤어져 길을 떠나 곧장 형주에 도착한다. 운장이 중당 中堂으로 불러들여 손님과 주 인으로 서로 인사를 나눈다. 제갈근이 현덕의 서찰을 꺼내며 말한다.

    “황숙께서 먼저 3군을 동오에 돌려줄 것을 허락하셨으니 바라건대 장군은 즉일 即日 (가까운 시일)에 교할 交割해주셔서 제 주님을 잘 만나뵙게 해주시오.”

    운장이 변색 變色하며 말한다.

    “내가 내 형과 도원결의하며 맹세코 한실 漢室을 함께 바로잡자 하였소. 형주는 본래 대한 大漢의 강토 疆土인데 어찌 망녕되게 한치라 도 남에게 주겠소? 장수가 밖에 있을 때는 군명 君命이라도 받아들이지 못하는 수가 있다, 라고 하였소. 비록 내 형의 서신이 도착했다 하더라도 나는 결코 돌려주지 못하겠소.”

    제갈근이 말한다.

    “지금 오후께서 제 노소를 잡아가둬 만약 형주를 돌려주지 않으면 곧 주살되고 말 것이오. 바라건대 장군께서 가련히 여기시오!”

    “이건 바론 오후의 휼계 譎計(간사한 꾀)이거늘 어찌 나를 속여넘기겠소!”

    “장군은 어찌 그렇게 목면 面目 (면목/ 체면)이 없소?”

    운장이 손에 검을 잡고 말한다.

    “그만하시오! 이 검도 면목이 없소이다!”

    관평이 고한다.

    “군사님의 면상 面上이 난처해집니다. 부친께서 노여움을 가라앉히십시오.”

    운장이 말한다.

    “군사님의 면상만 아니라면 그대를 결코 동오에 돌려보내지 않을 것이오!”

    제갈근이 얼글 가득 처참해져 서둘러 인사한 뒤에 배를 타고 다시 서주 西州로 가서 공명을 찾지만 공명은 이미 순시를 나간 뒤다.제갈 근이 하는 수 없이 현덕을 다시 만나 소리내 울며 운장이 자신을 죽이려 한 일을 고하자, 현덕이 말한다.

    “내 아우가 성급해 더불어 말하기 극히 어렵소. 자유子諭께서 되돌아가 계시면, 우리가 동천 東川,한중 漢中의 여러 군 郡을 얻은 뒤 운장더러 그곳을 지키게 하고, 그때 비로소 형주를 교부交付해드리겠소.”

    제갈근이 어쩔 수 없이 동오로 돌아가 손권을 만나 앞서 일어난 일들을 두루 이야기한다. 손권이 크게 노해 말한다.

    “자유께서 이렇게 반복해서 분주한 것은 바로 제갈량의 계책이 아니고 무엇이겠소?”

    “아닙니다. 제 아우 역시 울며 현덕에게 고하고서야 3군 郡을 먼저 돌려주는 것을 허락 받았으나 운장이 막무가내로 완강히 따르지 않았 습니다.”

    “기왕에 유비가 먼저 3군을 돌려준다 말했으니, 곧바로 관리를 장사, 영릉, 계양의 3군에 보내서 부임시켜서 어찌하는지 보는 게 우선이 겠소.”

    “주공의 말씀이 극히 옳습니다.”

    손권이 이에 제갈근에게 명하여, 그 노소를 데려가게 하고, 한편으로 관리를 3군에 보내서 부임시킨다. 하루도 안 돼, 3군에 파견된 관리 들이 모조리 쫓겨 돌아와 손권에게 고한다.

    “관운장 關雲長이 용납하지 않고 오늘밤 동오로 돌아가라 다그치며 뒤처지는 자는 죽이겠다 하였습니다.”

    손권이 크게 노해 사람을 보내 노숙을 불러서 꾸짖는다.

    “자경 子敬 (노숙의 자)이 지난날 유비를 보증하여, 우리 형주를 빌려주었소. 이제 유비가 이미 서주 西州를 차지하고서도 돌려주려 하 지 않으니 자경이 어찌 좌시하겠소?”

    “제게 이미 계책이 하나 있어 마침 주공께 고하려던 참이옵니다.”

    손권이 무슨 계책인지 묻자 노숙이 말한다.

    “이제 육구에 둔병 屯兵(병력 주둔)한 뒤 운장을 불러서 만나자 청하는 것입니다. 운장이 기꺼이 온다면 좋은 말로써 설득하고, 그가 오 지 않는다면, 뒤따라 즉시 진병 進兵해 더불어 승부를 결판내서 형주를 탈취 奪取하면 되옵니다.”

    “바로 내 뜻과 들어맞소. 즉시 행하시오.”

    감택 闞澤이 진언한다.

    “불가합니다. 관운장은 세상이 알아주는 호장 虎將이라 등한 等閒(호락호락)하게 맞설 사람이 아닙니다. 성사되지 못하고 도리어 그에 게 해를 입을까 두렵사옵니다.”

    손권이 노한다.

    “그렇다면 형주를 어느 세월에 얻겠소!”

    마침내 노숙에게 명해 이 계책을 속행 速行하라 한다. 노숙이 손권에게 고별하고 육구 陸口에 도착해 여몽 呂蒙과 감녕 甘寧을 불러 상의한다. 육구 요새 밖의 임강정 臨江亭에서 연회를 베풀며, 청서 請書 (초청하는 글)를 다듬어 써서, 부하 가운데 능언쾌어 能言快語( 말솜씨가 뛰어남)한 이를 골라 사신으로 삼아, 배를 타고 도강하게 한다. 강구 江口에서 관평 關平이 물어본 뒤 그 사자를 데리고 형주에 들어가 운장을 만난다. 사자는 노숙이 운장과 만나고자 하는 뜻을 두루 말하며, 청서를 바친다. 운장이 읽고나서 그 찾아온 사람에게 말 한다.

    “자경 子敬이 청했다니 내 내일 바로 연회에 참석할 것이오. 그대는 먼저 돌아가시오.”

    사자가 고별하고 떠나자 관평이 말한다.

    “노숙이 부른다면 필시 좋은 뜻이 아닙니다. 부친께서 무슨 까닭에 허락하셨는지요?”

    운장이 웃는다.

    “내 어찌 모르겠냐? 이것은 바로 제갈근이 돌아가 손권에게 보고하며, 내가 3군을 돌려줄 뜻이 없다는 것을 말하자 손권이 노숙에게 명 하여, 육구에 둔병한 뒤 나를 자리에 불러 바로 형주를 되찾아갈 셈이구나. 내가 가지 않으면 나를 겁쟁이라 말할 것이다. 내 내일 홀로 작은 배를 타고, 다만 10여 인을 데리고 단도부회 單刀赴會 (칼 한자루마 차고 참석함/ 매우 대담함)하여, 노숙이 어떻게 나를 대하는지 보겠다.”

    관평이 간언한다.

    “부친께서 어찌 만금 萬金처럼 귀중한 몸으로써 몸소 호랑虎狼의 소굴에 뛰어드시겠습니까? 백부께서 형주를 기탁하신 것을 무겁게 여 기시지 않는 소이가 아닐까 두렵습니다.”

    “나는 수많은 창칼이 난무하는 가운데 시석 矢石이 교차하는 때라도 필마 匹馬로 종횡 縱橫해 마치 무인지경 無人之境에 드나들 듯하 였다. 어찌 강동의 쥐떼를 걱정하겠냐!”

    마량 馬良도 간언한다.

    “노숙이 비록 장자 長者의 기풍이 있다 하지만 지금 사세가 다급하니 다른 마음을 품지 말란 법도 없습니다. 장군께서 가볍게 가셔서는 아니 되옵니다.”

    “지난날 전국시대 조나라 사람 인상여 藺相如는 닭 잡을 칼도 없이 민지 澠池의 모임에서 진 秦나라의 군주와 신하들을 아무 것도 아닌 듯이 여겼소. 하물며 나는 일찍이 만인 萬人을 대적하는 법을 배우지 않았소? 이미 허락했으니 실언할 수 없소이다.”

    “비록 장군이 가시더라도, 역시 마땅히 준비가 있어야 합니다.”

    “다만 내 아들에게 일러, 쾌속선 10 척을 골라, 뛰어난 수군 5백을 태워서 강 위에서 기다리게 하겠소. 내가 붉은 기를 들면 바로 강을 건 너게 하시오.”

    관평이 명령을 받들어 준비하러 간다.

    한편, 사자가 노숙에게 되돌아가 알리며, 운장이 개연히 응낙해 내일 올 것을 승낙했다 말한다. 노숙이 여몽과 상의한다.

    “이렇게 온다면 어찌해야겠소?”

    “그가 군마를 거느려 온다면 제가 감녕과 함께 각각 1군을 강둑 옆에 매복해 신호포 소리에 맞춰 시살 廝殺(교전/싸움)을 준비하겠소. 아무 병사도 없이 온다면, 다만 술자리 뒤에 도부수 50 인을 숨겨 연회 도중에 죽이겠소이다.”

    계책을 정하고 다음날 노숙이 사람을 시켜 강둑에서 멀리 살피게 한다. 진시 辰時 (오전 7-9시) 뒤에 강물 위로 한 척이 오는 것이 보이 는데, 키잡이와 뱃사람 겨우 몇사람뿐이다. 한편으로 붉은 깃발이 바람 속에 나부끼며 커다랗게 ‘관 關’ 자 하나가 뚜렷하다. 배가 점차 강둑에 다가오자 운장이 푸른 두건에 녹색 전포를 입고 배 위에 앉은 것이 보인다. 그 곁에 주창이 운장의 큰 칼을 받들고 있다. 8, 9 명의 관서 출신의 장한들이 각각 허리에 칼 한 자루씩 차고 있다. 노숙이 놀라 흠칫하며 정자 안으로 영접해 들인다. 인사를 마쳐, 자리에 앉아 음주하며 술잔을 들어 서로 권하나 감히 쳐다보지 못한다. 운장은 웃으며 태연자약하다.

    술이 거나해지자 노숙이 말한다.

    “군후께 드릴 말씀이 있사온데,부디 들어주시기 바랍니다. 지난날 군후의 형님이신 황숙께서 저를 시켜서, 제 주님의 면전에서 형주를 잠시 빌려 머물다가 서천을 얻은 후 귀환시킬 것을 보증하게 하셨습ㄴ다. 이제 서천을 얻었는데 형주는 돌려받지 못하니 실언이 없었다 하시겠습니까? “

    “이는 국가대사이니 술자리에서 논할 것이 아니오.”

    “저희 주께서 겨우 구구하게 강동의 땅뿐인데도 기꺼어 형주를 빌려드린 것은 군후님의 무리가 패전해서 멀리 왔기에 아무 근거지가 없 는 것을 염려하신 까닭이오. 이제 익주를 획득하셨으니 형주는 자연히 돌려주셔야지요. 이에 황숙께서도 3군을 기꺼이 먼저 떼어주실 마음뿐이신데 군후께서 또다시 따르시지 않으시면, 이치에 맞지 못할까 걱정입니다.”

    "오림의 역 役(전쟁)은 좌장군께서 친히 시석 矢石을 무릅쓰시고 협력해 적병을 깨부수었거늘 어찌 헛수고만 하고 한 척의 땅도 가질 수 없겠소? 이제 족하께서 다시 땅을 찾으러 오신 것이오?”

    “그렇지 않습니다. 군후께서 황숙과 더불어 장판에서 함께 패하여, 계책도 떨어지고 힘도 다해 장차 멀리 달아나려 하시자 우리 주께서 황숙이 아무 기댈 곳 없음을 가엾게 여기사, 토지를 아끼지 않으시고, 의지할 곳을 삼게 하시니 넉넉히 뒷날 공업을 도모하게 하신 것이지요. 그러나 황숙께서는 은덕과 호의를 저버리고 이미 서천을 얻고도 형주를 점유하며 욕심을 부려 의리를 저버리니 천하의 치욕스런 웃음거리가 될까 걱정입니다. 아무쪼록 군후께서 살펴주십시오.”

    “이 모두 형님의 일이라 내가 처리할 것이 아니오.”

    “제가 듣기에 군후께서 황숙과 도원에서 결의하여, 같이 죽고 살 것을 다짐하였습니다. 황숙이 곧 군후이시거늘 어찌 핑계를 대십니까”

    운장이 미처 회답하지 못하는데 주창이 섬돌 아래에서 소리높여 말한다.

    “천하의 토지는 오로지 덕이 있는 사람만 차지할 수 있거늘 어찌 너희 동오만 가져야 한다는 것이냐?”

    운장이 변색해 일어서 주창이 갖고 있던 큰 칼을 빼앗아 뜰 가운데 서서 주창을 노려보며 꾸짖는다.

    “이것은 국가대사이거늘 네 어찌 감히 말이 많냐! 썩 물럿거라!”

    주창이 뜻을 알아차리고 먼저 강어귀로 가서 붉은 깃발로 부르자 관평의 배가 쏜살같이 강동으로 넘어온다. 운장이 오른손은 칼을 쥐고 왼손은 노숙의 손을 붙잡고 거짓으로 취한 척 말한다.

    “공께서 지금 나를 연회에 부르신 것이니 형주의 일을 꺼내지 마시오. 내 이제 취해버려 오랜 친구 사이의 정을 해칠까 두렵소이다. 다른날 사람을 시켜 공을 형주로 초청해 따로 상의하겠소.”

    노숙이 넋이 나간 채 운장에게 붙들려 강변으로 간다. 여몽과 감녕이 각각 부하 군마를 이끌고 나가려 하지만 운장이 큰칼을 쥐고 있는 데다 직접 노숙을 잡고 있는지라 노숙이 다칠까 두려워 마침내 감히 움직이지 못한다. 운장이 뱃가에 이르러서야 손을 놓아주고 어느새 뱃머리에 서서 노숙에게 작별한다. 노숙이 바보처럼 어리둥절해 바라보니 관공의 배는 이미 바람을 타고 가버린 뒤다. 훗날 누군가 시를 지어 관공을 기렸다.

    동오의 신하를 어린 애 보듯 깔보더니
    칼 한 자루 들고 참석해서도 업신여길 줄이야
    바로 그해 한토막 영웅의 기운이
    그 옛날 민지 못의 인상여를 넘어서구나

    운장이 스스로 형주로 돌아가자 노숙이 여몽과 의논한다.

    “이 계책도 성공하지 못했으니 어찌해야겠소?”

    “가히 주공께서 알려, 병력을 일으켜 운장과 결전해야겠소.”

    노숙이 즉시 사람을 시켜 손권에게 보고한다. 손권이 듣고 크게 노하여, 온나라의 병력을 일으켜 형주를 취하러 갈 것을 상의한다. 그런데 조조도 3십만대군을 일으켜 올 것이라고 한다. 손권이 크게 놀라, 우선 노숙에게 형주와의 교전을 중단하게 하고, 병력을 합비와 유수로 이동하여 조조를 막도록 한다.

    한편 조조가 남쪽으로 원정을 떠나려는데 참군 부간 '언재'가 글을 올려 간언한다. 글은 대략 이렇다.

    ‘제가 듣자오니 무력을 쓰자면 위엄을 앞세워야 하며, 문치를 쓰자면 덕을 앞세워야 한답니다. 위엄과 덕이 서로 도우면, 훗날 왕업이 이 뤄집니다. 지난날 천하대란의 시기에, 명공께서 물리치셔서 열 가운데 아홉을 평정하셨습니다. 이제 왕명을 미처 받들지 않는 자는 동오 와 촉뿐입니다. 동오는 장강의 험준함이 있고, 촉은 숭산 崇山이 가로막아 윽발질러 싸우기 어렵사옵니다. 제가 생각하기에, 마땅히 문덕 文德을 더욱 갈고 닦고, 갑옷을 말아두고 싸움을 그만둬서, 병사를 쉬게하고 양성해 때를 기다려 움직여야 할 것입니다. 지금 만약 수 십만 대군을 일으켜서 장강의 물가에 주둔하더라도, 적들이 그 험준함에 기대어 깊숙히 숨는다면, 우리 군마로 하여금 그 능력을 다하지 못하게 하고, 뜻밖의 변고에 쓸 수 있는 방편이 없다면, 하늘 같은 위엄이 굽혀지고 말 것이옵니다. 오로지 명공께서 자세히 살펴주소서.”

    조조가 읽고나서 남쪽 정벌을 그만두고 학교를 세우고 문사들을 예우한다. 이에 시중 왕찬,두습,위개,화흡이 조조를 위왕으로 높이고자 의논한다. 중서령 순유가 말한다.

    “불가하옵니다. 승상께서 벼슬이 위공까지 이르시고 영예는 구석을 더하여 지위가 이미 극에 달하였사옵니다. 이제 또다시 나아가 왕위에 오름은 이치에 맞지 않사옵니다. "

    조조가 듣더니 노해 밀한다.

    "이 사람이 순욱처럼 되고 싶구나!'

    순유가 이를 알고 근심하며 분하게 여겨 병이 나서 드러누워 십수일만에 죽고마니 망년 58세다. 조조가 그를 후장하고 결국 위왕의 일을 파한다.

    하루는 조조가 검을 차고 입궁하자 마침 헌제가 복황후와 함께 앉아 있다가 조조가 오는 것을 본 복황후가 황망히 일어선다. 황제도 조조를 보더니 벌벌 떤다. 조조가 말한다.

    "손권과 유비가 각각 일방을 차지해 조정을 받들지 않는데 어찌해야겠습니까?"

    "모두 위공께서 알아서 처리하시오."

    조조가 노해 말한다.

    "폐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니 남들이 들으면 제가 임금을 업신여기는줄 알지요."

    "그대가 기꺼이 보좌해주면 참으로 다행이겠소. 그렇지 않더라도 부디 은혜를 내려서 짐을 버리지는 마시오."

    조조가 듣고 황제를 노려보고 몹시 한스러워 하며 나간다. 황제의 좌우에서 누군가 아뢴다.

    "요새 듣자니 위공이 스스로 위왕이 되고자 한다는데 머지않아 제위를 찬탈할 것입니다."

    헌제가 복황후와 더불어 통곡한다.

    황후가 말한다.

    "첩의 부친 복완은 늘 조조를 죽일 마음을 품고 있습니다. 이제 제가 마땅히 서신 1봉을 다듬어 써서 몰래 부친께 드려 도모하도록 하겠 습니다. "

    "지난날 동승은 기밀을 지키지 못해 도리어 큰 화를 만났소. 이제 다시 누설되면 짐과 그대 모두 끝장날 것이오!"

    "아침저녁으로 바늘방석에 앉은 듯하오니 이렇게 사람이 사느니 차라리 어서 죽음만 못하겠습니다! 제가 살피니 환관들 가운데 충의로 워 믿고 맡길 이는 목순뿐입니다. 이제 이 서찰을 맡겨야겠습니다."

    이에 즉시 목순을 불러 병풍 뒤로 들어가 좌우의 근시들을 물리친다.

    헌제와 황후가 울며 목순에게 고한다.

    "조조 역적이 위왕이 되고자 하니 조만간 반드시 찬탈을 행할 것이오. 짐이 복완에게 지시해 은밀히 이 역적을 도모하고자 하나 좌우의 사람들이 모조리 역적의 심복이라 믿고 맡길 이가 없소. 그대가 황후의 밀서를 지니고 복완에게 전해주기를 바라오. 그대의 충의를 헤아 려서니 부디 짐을 저버리지 마시오."

    목순이 흐느껴 울며 말한다.

    "신이 페하의 큰 은혜를 입어 어찌 감히 죽음으로써 갚지 않겠습니까? 신이 즉시 행하겠나이다."

    황후가 이에 글을 다듬어 목순에게 준다. 목순이 머리털 속에 숨겨 몰래 금궁을 나가 곧장 복완의 집에 다다라 서찰을 바친다. 복완이 황 후의 친필인 것을 보고 목순에게 말한다.

    "조조 놈의 심복이 심히 많아 급히 도모할 수 없소. 강동의 손권, 서천의 유비 두 곳에서 병력을 일으키면 조조가 반드시 스스로 갈 것이 오. 이때 조정의 충의로운 신하들에게 요청해서 다 함께 도모하는 것이오. 내외에서 협공하면 십중팔구 성공할 것이오."

    "황장( 황제의 장인) 께서 서신을 작성하셔서 황후께 아뢰어 밀조를 구해 몰래 사람을 동오와 촉 두곳으로 보내 병력을 일으켜 역적을 토벌해 임금을 구할 것을 약속하게 하십시오."

    복완이 즉시 종이를 가져다 서신을 써 목순에게 준다. 목순이 두발 속에 숨겨 복완과 작별하고 궁으로 돌아간다.

    알고보니 어느새 누군가 조조에게 알려주어 조조가 궁문 앞에서 미리 기다리고 있다. 목순이 돌아오다가 마주치니 조조가 묻는다.

    "어디 갔다 오시오?"

    "황후께 병이 있어 의원을 구하러 가라 명하셨습니다."

    "부른 의원은 어딨소?"

    "아직 도착하지 않았습니다."

    조조가 좌우에 호통쳐 그 몸을 샅샅이 수색하게 하지만 아무 것도 가진 게 없어 놓아 보낸다. 홀연히 바람이 불어 그가 머리에 쓴 관모를 떨구자 조조가 다시 불러 그 관모를 가져다 두루 살피나 아무 것도 차지 못해 다시 관모를 쓰라 명하는데 목순이 두 손으로 관모를 꺼꾸 로 쓰고만다.

    조조 마음에 의심이 일어 좌우를 시켜 그 두발 속을 수색하니 복완의 서신을 찾아내어 온다. 조조가 읽어보니 그 내용은 손권, 유비와 연 결해 바깥에서 호응하게 하려는 것이다. 조조가 크게 노해 목순을 밀실에 잡아가둬 심문하나 목순은 자백하지 않는다.

    조조가 그날밤 갑병 3천을 동원해 복완의 사택을 에워싸고 늙은이나 아이를 가리지 않고 잡아들인다. 복 황후의 친필 서신을 찾아내자 뒤 따라 복씨의 삼족을 모조리 하옥한다. 날이 밝자 어림군을 맡은 희려를 시켜 부절을 지니고 입궁해 먼저 황후의 새수 璽綬(천자의 인 장과 인수 )를 거둬들인다.

    이날 헌제는 외전에 있었는데 희려가 갑병 3백을 거느려 곧장 입궁하는 것일 본다. 헌제가 희려에게 묻는다.

    "무슨 일이오?"

    "위공의 명을 받자와 황후의 새수를 거두고자 하옵니다."

    헌제는 일이 누설된 것을 알고 심장과 간담이 모두 부서진다.

    희려가 후궁에 이르자 복 황후가 막 일어선다. 희려가 곧 새수를 관리하는 사람을 불러 옥새를 꺼내 나가게 한다. 복 황후는 일이 누설된 것을 알아채고 전각 뒤 초방 椒房( 황후의 거처) 안 좁은 벽 속에 숨는다.

    잠시 뒤 상서 벼슬의 화흠이 병사 5백을 이끌고 후전으로 들어와 궁인들에게 묻는다.

    "복황후가 어디 있는가?"

    궁인들 모두 모르겠다고 하자 화흠이 지시해 갑병들이 붉은문을 두드리며 열어서 찾지만 보이지 않는다. 벽 속에 있을 것 같아서 갑사들에게 벽을 부숴 찾게 한다. 화흠이 직접 손을 놀려 황후의 머리채를 잡아채어 끌어낸다.

    황후가 말한다.

    "제발 내 한 목숨을 살려주오."

    화흠이 질타한다.

    "네 스스로 위공께 빌어보거라!"

    황후의 머리가 뜯겨져 맨발인 채 두 갑사에게 붙들려 끌려 나간다.

    원래, 화흠은 평소 문명 文名이 있어 일찍이 병원과 관녕과 우정을 쌓았다. 당시 사람들이 세 사람을 한마리 용과 같다고 칭했 다. 화흠은 용머리, 병원은 용의 배, 관녕은 용꼬리라 하였다.

    하루는, 관녕과 화흠이 함께 밭에 씨를 뿌리고 김을 매다 황금을 발견했다. 관녕은 호미를 휘두를 뿐 뒤돌아보지 않는데 화흠은 주워들고 바라본 뒤에야 내던졌다. 또 하루는, 관녕이 화흠과 함께 앉아 책을 보는데 문밖에서 전호 傳呼(높은 관리가 행차할 때 길을 비키게 하는 것)하는 소리가 들리니 어느 귀인이 초헌(관리가 타는 수레 )을 타고 지나는 것이었다.

    관녕은 단정히 앉아 움직이지 않는데 화흠은 책을 제쳐두고 보러 갔다. 관녕이 이로부터 화흠의 사람됨을 비루하다 여겨 결국 자리를 갈라 앉고 다시는 그와 벗하지 않았다.

    뒷날 관녕은 요동 지방에 은거하며 늘 하얀 두건을 쓰고 어느 누각 위에서 머물며 땅을 밟지 않고 종신토록 결코 위나라를 섬기려 하지 않았으나 화흠은 앞서 손권을 섬기다 뒤에 조조에게 귀순해 이때에 이르러 복 황후를 붙잡아들이는 일을 하게 된 것이다. 뒷날 누군가 시를 지어 화흠을 한탄했다.

    화흠이 그날 흉악한 짓을 저질러
    벽을 부숴 황후를 사로잡는구나
    모진 놈을 도와 하루아침에 호랑이에게 날개를 달아주네
    천년이 지나도 그 이름을 욕하니 용머리라 일컬은 게 우습구나

    또 누군가 시를 지어 관녕을 기렸다.

    요동에 예로부터 관녕의 누각 전하니
    사람은 누각을 떠나도 그 빈 이름 홀로 남았네
    그대가 구차히 부귀를 탐함을 비웃어 마지않으니
    어찌 백모 쓴 그의 풍류 같을쏘냐

    한편, 화흠이 복 황후를 외전까지 끌고 나오니 헌제가 황후를 보고 전각을 내려와 껴안고 소리내 운다. 화흠이 말한다.

    "위공의 명령이니 어서 가자!"

    황후가 울며 황제에게 말한다.

    "저를 다시 살려주실 수 없겠지요?"

    "내 목숨도 언제 어찌되지 모르겠구려!"

    갑사들이 황후를 압송해 가자 황제는 가슴을 치며 서럽게 운다.

    옆에 희려가 보이자 헌제가 말한다.

    "희공! 천하에 어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소!"

    통곡하다 땅에 쓰러지니 희려가 좌우에 명해 헌제를 부축해 입궁시킨다.

    화흠이 복황후를 잡아가 조조에게 보인다. 조조가 욕한다.

    "내 너희를 성심으로 대했거늘 너희는 도리어 나를 해치려고만 하느냐? 내가 너를 죽이지 않으면 네가 나를 죽이겠구나!"

    좌우에 호통쳐 막대로 난타해 죽이고 즉시 입궁해 복 황후가 낳은 두 아들 모두를 짐살(독살 )한다.

    이날 저녁 복완과 목순의 종족 2백여 명을 모조리 저잣거리에서 참한다. 조야 朝野의 사람들 가운데 경악하지 않는 이 없다. 이때가 건안 19년 11월이다. 뒷날 누군가 시를 지어 기렸다.

    조아만처럼 흉악한 이 세상에 없으니
    복완이 충의로워도 어찌하겠는가?
    가련하도다! 황제와 황후 생이별하니
    민간의 부부보다 못한 신세로구나!

    헌제가 복 황후를 잃고 연일 식음을 전폐한다. 조조가 들어와 말한다.

    "폐하, 걱정하지 마십시오. 신에게 다른 마음은 없사옵니다. 신의 딸이 이미 페하의 귀인이온데 매우 어질고 효성스러워 마땅히 정궁 正 宮에 거처할 만하옵니다."

    헌제가 어찌 감히 따르지 않으리오? 건안 20년 정월 초하루에 정단지절(설날 )을 경하하며 조조의 딸 조 귀인을 정궁의 황후로 책립한 다. 아래에서 아무도 감히 뭐라 말하지 못한다.

    이때 조조의 위세가 날이 갈수록 심해져, 대신들을 불러모아 동오를 거두고 촉을 멸할 것을 상의한다. 가후가 말한다.

    "하후돈과 조인, 두 사람을 불러와서 이 일을 상의해야 합니다."

    조조가 즉시 사자를 보내 한밤중에 불러 온다. 하후돈이 아직 오기 전에 조인이 도착해 그날밤 부중으로 들어가 조조를 만나려 한다. 조조가 막 술에 취해 누워, 허저가 칼을 짚고 당문 안에 서 있다.

    조인이 들어가려 하자 허저가 막아선다. 조인이 크게 노해 말한다.

    "나는 바로 조씨 종족이거늘 네가 감히 가로막냐?"

    "장군께서 비록 친족이시나 외번을 지키는 관리요. 나는 비록 친족은 아니나 현재 안에서 모시는 사람이오. 주공께서 술에 취해 당상에 누워 계시니 감히 들어가게 할 수 없소이다."

    조조가 듣더니 감탄한다.

    "허저는 참으로 충신이로다."

    며칠 안 돼 하후돈도 도착해 함께 정벌을 상의한다.

    하후돈이 말한다.

    "동오와 촉은 아직 서둘러 공격할 수 없습니다. 마땅히 한중의 장로를 먼저 취해 그 승리를 거둔 병력으로써 촉을 취한다면 가히 일고 一 鼓에 함락할 수 있습니다."

    조조가 말한다.

    "바로 내 뜻에 들어맞소."

    결국 병력을 일으켜 서쪽 정벌에 나선다.

    방금 흉악한 꾀를 써서 힘없는 군주를 기망하더니
    다시 강병을 출동하여 변방을 쓸어버리려 하구나

    뒷일이 어찌될지 모르겠구나. 다음 회에 풀리리다.

다음 회

"무릇 천리마 하루 천리를 가지만 느린 말도 열흘이면 역시 간다 夫驥一日而千里, 駑馬十駕, 則亦及之矣" (순자 荀子)
나관중 羅貫中이 쓰고 모종강 毛宗崗이 개수한 삼국연의 三國演義 원본을 한문-한글 대역 對譯으로 번역해봤습니다.
2009년부터 7년간 번역해 제 블로그에 올린 걸 홈페이지로 만들었습니다.

정만국(daramzui@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