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 회
제76회 서공명이 면수에서 크게 싸우고 관운장이 맥성으로 패주한다
한편 미방은 형주를 이미 잃은 것을 알고 있으나 지금 써볼 계책이 없다. 그런데 공안을 지키는 장수 부사인이 왔다고 하니 황망히 성으로 맞아들여, 무슨 까닭인지 묻는다. 부사인이 말한다.
“내가 불충한 게 아니라 형세가 위급하고 힘이 모자라 오래 버틸 수 없었소. 내 이미 동오에 투항했으니 장군도 어서 투항함만 못하겠소. ”
“우리는 한중왕의 두터운 은혜를 입어, 어찌 차마 배신하겠소?”
“관공이 떠나던 날 우리 두 사람을 몹시 미워했소. 어느날 승리해서 돌아온다면, 필시 가볍게 노하지 않을 것이오. 공께서 잘 생각해보시 오.”
“우리 형제는 오랫동안 한중왕을 섬겨, 어찌 하루 아침에 배신하겠소?”
이렇게 주저하고 있는데 관공의 사자가 왔다고 하니 청상 廳上으로 불러들인다. 사자가 말한다.
“관공의 군중에 양식이 모자라 특별히 남군과 공안 두 곳에서 백미 십만 석을 취해, 두 장군더러 밤낮으로 수송해, 군전 軍前에 교할 交 割(인도/ 인계)하라 명하셨소.”
미방이 크게 놀라 부사인을 돌아보며 말한다.
“지금 형주를 이미 동오에게 빼앗겨, 이 양식을 가지고 어떻게 지나가겠소?”
부사인이 소리높여 말한다.
“이것저것 머뭇거릴 것 없소!”
곧 검을 뽑아들더니 사자를 당상에서 베어죽인다. 미방이 놀라 말한다.
“공께서 왜 이러시오?”
“관공이 이러는 것은 바로 우리 두 사람을 죽이려해서요. 우리가 어찌 꼼짝없이 죽기를 기다리겠소? 공께서 지금 어서 동오에 투항하지 않으면, 반드시 관공에게 죽을 것이오.”
이렇게 이야기는데 여몽의 병력이 성 아래 몰려왔다고 하니 미방이 크게 놀라 부사인과 함께 성을 나가 투항한다. 여몽이 크게 기뻐하며 그들을 데리고 손권을 만난다. 손권이 두 사람을 크게 포상한다. 백성들을 안심시키고, 삼군을 크게 호궤한다.
그때 조조는 허도에서 마침 모사들과 더불어, 형주 사태를 의논하고 있었다. 그런데 동오의 사자가 서찰을 전하러 왔다고 한다. 조조가 불러들이자 사자가 서신을 바친다. 조조가 뜯어서 읽어보니 오병들이 곧 형주를 엄습하므로 조조도 운장을 협공하라 요청하는 것이다. 또한, 누설돼서 운장이 대비하는 일이 절대 없도록 당부하는 글이다. 주부 동소 董昭가 말한다.
“지금 번성이 곤경에 처해, 목을 길게 빼고 구원을 갈망합니다. 먼저 사람을 시켜 서찰을 화살에 매어, 번성으로 쏘아보내 일단 군심을 풀어줘야겠습니다. 그리고 관공에게도 동오가 형주를 습격한다고 알리십시오. 형주를 잃을까 두려워, 반드시 병력을 물릴 테니, 서황을 시켜 그 틈에 엄살하면, 가히 전공 全功(완전한 공적)을 거둘 것이옵니다.”
조조가 그 계책을 따라, 사람을 보내 서황을 독려해 서둘러 싸우라 하면서 친히 대병을 통솔해, 곧장 낙양 남쪽, 양릉파 陽陵坡에 주둔 해, 조인을 구원하고자 한다.
한편, 서황이 장중에 앉아 있는데, 위왕의 사자가 왔다 한다. 서황이 불러들여 물으니 사자가 말한다.
“지금 위왕께서 병력을 이끄시고, 이미 낙양을 지나셨습니다. 장군더러 어서 관공과 싸워, 번성의 위기를 풀라 하십니다.”
이렇게 이야기하는데, 탐마(정찰기병/ 정찰하는 사람)가 보고한다.
“관평은 언성 偃城에, 요화는 사총 四冢에 둔병했습니다. 앞뒤 열두 개 채책(영채)이 서로 연락이 끊이지 않습니다. "
서황이 즉시 부장, 서상과 여건을 보내며 서황 자신의 기호 旗號(깃발)를 가지고 먼저 언성으로 가서 교전하도록 한다. 서황 스스로 정병 5백을 거느려 면수 沔水를 돌아 언성 배후를 습격하러 간다.
한편, 관평은 서황 스스로 병력을 이끌고 오는 것을 듣고 부하 병력을 이끌고 적병을 맞받아친다. 양쪽 진영이 대원 對圓(전투진영을 갖춤)하자 관평이 출마해 서상과 교봉한다. 겨우 3합에 서상이 대패해 달아난다. 관평이 승세를 타고, 2십 리 남짓 추격하는데 언성 안에서 불길이 치솟는다 알린다.
관평이 계책에 빠진 것을 알아채고, 서둘러 병력을 이끌고 언성을 구원하러 돌아간다. 그러나 바로 1군이 포진한 것과 마주친다 . 서황이 문기 아래 말을 세워 크게 외친다.
"관평 현질(조카의 높임말)! 정말 곧 죽을 것을 모르는가! 너희 형주를 이미 동오가 빼앗았거늘 아직도 여기서 미친 짓인가!”
관평이 크게 노해, 말을 내달려 칼을 휘두르며 서황에게 덤빈다. 3, 4합을 못 넘겨, 삼군에서 함성이 울리고, 언성 안쪽에서 불길이 크게 치솟는다. 관평이 감히 더 싸울 마음이 사라져, 서둘러 큰 길을 따라 곧장 사총의 영채로 달아난다. 요화가 맞이해 말한다.
“사람들이 말하기를, 형주가 이미 여몽에게 습격당했다 합니다. 군심이 경황스러운데 이를 어찌하겠습니까?”
“이것은 필시 와언 訛言(헛소문)일 것이오. 다시 말을 꺼내는 병사들은 참하겠소!”
문득 유성마 流星馬(유성처럼 빠른 말/ 군사정보를 전달하는데 쓰임)가 달려와 알린다. 바로 북쪽의 제일둔 第一屯 (첫번째 주둔지)을 서황이 이끄는 병력이 공타하고 있다 한다. 관평이 말한다.
“제일둔을 잃으면 여러 영채가 어찌 안녕하겠소? 이곳은 모두 면수 沔水를 등지고 있으니 적병이 감히 이곳까지 오지 못할 것이오. 나와 그대가 함께 가서 제일둔을 구원해야겠소.”
이에 요화가 부장을 불러 분부한다.
“너희는 영채를 굳게 지키고, 적병이 오는 즉시 불을 피워 신호하라.”
부장이 말한다.
“이곳 사총의 영채는 녹각 鹿角(사슴뿔처럼 뾰족한 방어설비)이 십중 十重(겹겹이 중첩됨)하니, 비록 하늘을 나는 새들이라도 들어오지 못할 텐데 어찌 적병을 근심하겠습니까?”
이에 관평과 요화가 사총 영채에서 정병을 모조리 일으켜 제일둔으로 달려가 주둔한다. 관평이 보니, 위병들이 야트막한 산 위에 주둔한 지라, 요화에게 말한다.
“서황의 병력이 지리 地利를 얻지 못했으니, 오늘밤 병력을 이끌고 적진을 습격해야겠소.”
“장군께서 병력 절반을 나눠 가시면, 저는 이곳 본채를 근수 謹守하겠습니다.”
이날밤 관평이 1군을 이끌고 위나라 영채에 돌입하나, 아무도 보이지 않는다. 관평이 계책에 빠진 것을 깨달아, 부리나케 되돌아갈 때 왼쪽에서 서상이, 오른쪽에서 여건이 양쪽에서 협공한다. 관평이 크게 져서 영채로 돌아가니 위병들이 승세를 타고 추격해, 사 방으로 에워싼다. 관평과 요화가 버티지 못하고 제일둔을 포기해, 사총의 영채로 달려간다. 그런데 어느새 영채 안쪽에서 치솟는 불길이 보인다. 급히 영채 앞에 당도하니, 모조리 위병들의 깃발이다. 관평 등이 병력을 물려, 정신없이 번성 대로를 찾아 달아난다. 앞쪽에서 1군이 막아서는데 선두 대장은 바로 서황이다. 관평과 요화 두 사람이 힘껏 죽기로 싸워 길을 뚫고 달아나, 대채(큰 영채)로 되돌 아가 관공을 만나 말한다.
“이제 서황이 언성 등 여러 곳을 빼앗은데다 조조 스스로 대군을 이끌고 세 갈래로 번성을 구하러 옵니다. 많은 이들이 말하기를, 형주를 여몽이 습격했다 합니다.”
관공이 꾸짖는다.
“이것은 적인들의 와언이니, 우리 군심을 어지럽힐 뿐이다! 동오의 여몽은 병세가 위중해, 어린놈 (유자 孺子) 육손이 대신했으니 걱정할 것이 못 된다!”
그 말이 미처 끝나기 전에, 서황 병력이 왔다 한다. 관공이 말을 준비하자 관평이 간언한다.
“아버님께서 아직 낫지 않으셨으니 적병과 싸우시면 안 됩니다.”
“서황과 나는 옛부터 알아서 그 능력을 잘 안다. 그가 물러서지 않으면 내 먼저 그를 참해, 위나라 장수들에게 경고하겠다.”
곧 갑옷을 걸쳐 칼을 들고 말에 올라 분연히 출전한다. 위군 魏軍이 보더니, 놀라고 두려워하지 않는 이 없다. 관공이 말을 세워 말한다.
“서공명은 어디 계시오?”
위군 영채의 문기가 열리며 서황이 출마해, 몸을 굽혀 말한다.
“군후와 헤어진 뒤, 어느새 몇년이 흘렀소. 뜻밖에 군후께서도 수염과 머리카락이 벌써 창백 蒼白해지셨구려. 생각컨대 지난날 장년 壯 年(한창 기운이 씩씩한 시기)에 상종하며, 많이 가르침을 받은 것은 감사하고 잊지 못하겠소. 이제 군후의 영풍 英風(아름다운 명성/ 영 웅스러 자태)이 화하(중원)에 진동하는 것을 고인(친구/ 서황 자신)도 듣게 되니, 참으로 찬탄하지 않을 수 없소! 이곳에서 다행히 다시 한번 만나뵈니, 그간의 갈회 渴懷(갈망)를 깊이 푸는 듯하오.”
관공이 말한다.
“나와 공명은 교계 交契(교분)가 심히 두터워 타인과 비할 수 없소. 그런데 지금 무슨 까닭에 몇차례나 내 아들을 핍박하셨소?”
서황이 장수들을 되돌아보며 큰 소리로 말한다.
“운장의 수급(목)을 얻는 이는 천금의 큰 상을 내리겠소!”
관공이 놀라 말한다.
“공명께서 어찌 이런 말을 꺼내시오?”
“오늘은 국가의 일이니, 내 감히 사사로움으로써 공무를 저버릴 수 없소!”
말을 마치고 큰 도끼를 휘두르며 곧장 관공에게 덤빈다. 관공이 크게 노해 역시 칼을 휘두르며 맞이해 8십여 합을 싸운다. 관공이 비록 무예가 절륜하나 아무래도 오른팔은 아직 힘이 약하다. 관평은 혹시 관공이 실수할까 두려워 화급히 징을 친다. 관공이 말머리를 돌려 영채로 돌아오는데 갑자기 사방에서 함성이 크게 진동한다. 알고보니 번성의 조인이 조조의 구원병이 온 것을 듣고 군을 이끌고 급히 번성을 빠져나와 서황과 회합해 양쪽에서 협공하는 것이다. 형주병들이 크게 어지러워진다. 관공이 말에 올라 장수들을 거느리고 양강 의 상류쪽으로 달려간다. 배후에서 위병들이 추격한다. 관공이 급히 양강을 건너서 양양으로 달려간다. 문득 유성마가 달려와 알린다.
"형주는 이미 여몽이 빼앗아 가권陷(집안식구와 하인)들이 사로잡혔습니다.”
관공이 크게 놀라, 양양으로 갈 엄두를 못내고 병력을 이끌고 공안으로 온다. 탐마가 다시 보고한다.
“공안의 부사인이 이미 동오에 항복했습니다.”
관공이 크게 노하는데, 최량 催糧(관청에서 식량이나 재물을 거두는 것)을 맡은 사람이 와서 알린다.
“공안의 부사인이 남군으로 가서, 사명(사자)을 살해하고 미방을 설득해 함께 동오로 투항하러 갔습니다.”
관공이 이 말을 듣더니 노기가 치솟아 상처가 터져, 혼절하며 땅에 쓰러진다. 장수들이 구원해서 깨운다. 관공이 사마 司馬 왕보를 돌아 보며 말한다.
“후회스럽게도 족하의 말씀을 경청하지 않아 과연 오늘 이런 일이 생겼구려!”
이어서 묻는다.
“강을 따라 상하류에서 어째서 봉화를 올리지 않았는가?”
탐마가 답한다.
“여몽이 수군들 모두에게 흰 옷을 입혀, 떠돌이장삿꾼으로 꾸미고 정병들을 구록(배의 일종) 안에 매복해, 먼저 봉화대를 지키는 사졸들을 사로잡았습니다. 그래서 불을 피워올리지 못했습니다.”
관공이 발을 구르며 탄식한다.
“내가 간사한 적들의 음모에 빠지다니! 무슨 면목으로 형장(형님)을 만나뵙겠냐!”
관량도독(군량담당관리) 조루가 말한다.
“지금 사세가 위급하오니 사람을 성도에 보내 구원을 요청하시면서 지름길을 따라 형주를 취하러 가야 합니다.”
관공이 그 말을 좇아서 마량과 이적더러 문서를 지니고 여러 갈래 길을 따라 밤낮으로 성도로 찾아가서 구원을 청하게 한다. 그러면서 병력을 이끌고 형주를 취하러 간다. 스스로 전대(전방대열)를 이끌어 앞서고, 요화와 관평을 남겨 후미를 차단한다.
한편, 번성의 포위가 풀려, 조인이 장수들을 이끌고 조조를 만나, 흐느끼며 절을 올리며 죄를 청한다. 조조가 말한다.
“이것은 천수(하늘의 운수)이지 그대들의 죄가 아니오.”
조조가 삼군을 크게 포상하고 친히 사총의 영채에 이른다. 주위를 둘러보고 장수들을 돌아보며 말한다.
“형주병들이 해자를 둘러 파고, 녹각을 겹겹이 놓았는데 서공명이 그 가운데 깊이 침입해 마침내 전공 全功을 거뒀소. 고 孤가 수십년간 용병했으나 아직 이처럼 크게 진격해 적위 敵圍(적진)를 뚫고 들어가지는 못했소. 공명은 참으로 담식겸우 膽識兼優(담량이 크고, 견식 이 넓음)한 사람이오!”
뭇 장수 모두 탄복한다. 조조가 군대를 거둬 마파 摩陂로 돌아가 주둔한다. 서황 병력이 도착하자 조조 스스로 영채를 나와 맞이한다. 바 라보니 서황 병사들 모두 대오를 맞춰 행군하는데다 흐트러짐이 없다. 조조가 크게 기뻐하며 말한다.
“서장군은 참으로 주아부 周亞夫(무후 주발의 아들로서, 칠국의 반란을 토벌한 장군)의 풍모를 지녔구려!”
마침내 서황을 평남장군으로 봉하고, 하후상과 함께 양양을 지키며 관공의 군대를 막도록 한다. 조조는 형주가 아직 평정되지 않아, 마 파에서 둔병하며 소식을 기다린다.
한편 관공은 형주로 가는 길에 나아가지도 물러나지도 못해 조루에게 말한다.
"지금 당장 앞으로 오병이, 뒤로 위병이 있는데 우리는 그 사이에 있으니 어찌해야겠소 ?"
"지난날 여몽이 육구에 있을 때 일찍이 군후께 서신을 보내며 양가가 우호를 맺어 조조 역적을 함께 벌할 것을 청했습니다. 이제 도리어 조조를 도와 우리를 습격하니 이것은 맹약을 배신한 것입니다. 군후께서 여기 잠시 군대를 주둔하면서 사람을 보내 글을 전해 그것을 책망하십시오. 그래서 그가 어떻게 대답하는지 봐야겠습니다. "
관공이 그 말을 따라 글을 다듬어 사자를 형주로 보낸다.
한편 여몽은 형주에 머물며 호령을 하달한다. 형주 여러 군에서 관공을 따라 출정한 장사(장졸)들의 집을 오병들이 괴롭히는 것을 불허 하고 월급에 따라 양미 糧米(쌀)를 준다. 병환이 있으면 의생을 보내 치료한다. 장사들 집마다 은혜에 감격하고 안도하며 동요하지 않는 다.
그런데 관공의 사자가 왔다 한다. 여몽이 성곽을 나가 맞이해 성으로 들어와 빈례 賓禮로써 대한다. 사자가 서찰을 여몽에게 바치 니 여몽이 읽기를 마쳐 사자에게 말한다.
“나는 지난날 관공과 우호를 맺은 적이 있으나 그것은 바로 일기 一己(자기 한몸)의 사견일 뿐이었소. 오늘 일은 바로 상명 上命이 차견 差遣(일을 시켜서 보냄)한 것이니 스스로 마음대로 할 수 없소. 수고스럽더라도 장군께 돌아가, 좋은 말로써 내 뜻을 전해주시오.”
이어서 연회를 베풀어 환대하고, 관역 館驛(문서를 전달하던 이들이 쉬거나 말을 갈아타던 곳)으로 돌려보내 쉬게 한다. 이에 원정에 나 선 장사들의 가족이 모두 와서 소식을 묻는다. 누구는 집안의 편지를 가져오고 누구는 말로써 소식을 전하며 모두 말하기를, 집안마다 무사하고 옷과 음식도 모자라지 않는다 한다.
사자가 여몽에게 작별을 고하니 여몽이 친히 성곽을 나와 배웅한다. 사자가 돌아가 관공을 만나 여몽의 말을 모두 전한다. 아울러 형주 성중에 군후의 보권 寶眷(가족의 높임말)과 장수들의 가속(집안식구) 모두 무사하고 옷과 음식 공급도 모자라지 않는다 한다. 관공이 크 게 노해 말한다.
“이것은 간사한 도적의 계략이다! 내 살아서 이 도적을 죽이지 못하면 죽어서라도 반드시 죽여 내 한을 풀겠다!”
사자를 꾸짖어 내쫓는다. 사자가 영채를 나오자 장수들 모두 와서 가족의 일을 캐묻는다. 사자는 집안마다 안호 安好(아무 일 없이 잘 지 냄)하고, 여몽이 극진히 은혜를 베풀어 돌본다 말한다. 그리고 서신을 꺼내 장수들마다 전하니, 장수들마다 기뻐하며 모두 싸울 마음이 사라진다.
관공이 병력을 이끌고 형주를 취하러 행군할 때 많은 장졸이 형주로 달아난다. 관공이 더욱 미워하고 노하며 군대를 다그쳐 전진한다. 그런데 갑자기 함성이 크게 일며 1군이 가로막는다. 선두의 대장은 바로 장흠인데 말을 세워 창을 들고 크게 외친다.
"운장은 어찌 어서 항복하지 않소!"
관공이 욕한다.
"나는 한나라 장수이거늘 어찌 도적에게 항복하겠냐?"
말에 박차를 가해 칼을 휘두르며 장흠에게 달려든다. 불과 3합만에 장흠이 패주한다. 관공이 칼을 들고 2십여 리를 뒤쫓는데 갑자기 함 성이 일며 왼쪽 산골짜기는 한당이, 오른쪽 산골짜기는 주태가 병력을 거느리고 치고나온다. 장흠도 말머리를 돌려 다시 싸운다. 세 갈 래에서 협공하자 관공이 급히 군대를 거둬 되돌아 달아난다.
몇 리 못 가서 남쪽 산등성이 위에서 사람들이 모여 있는데 하얀 깃발이 펄럭인다. 깃발에 ‘형주토인 荊州土人(형주의 토착주민들)’이란 네 글자가 쓰여 있다. 그들이 일제히 외친다.
“본처 사람들은 속속히 투항하시오!”
관공이 크게 노해 산등성이를 올라 죽이려는데 산속에서 2로의 군대가 튀어나온다. 왼쪽은 정봉이요 오른쪽은 서성이다. 장흠 등이 이끌던 세 갈래 군마와 합세하니 함성이 대지를 뒤흔들고 고각 鼓角(북과 나팔) 소리 하늘을 울린다. 금세 관공이 겹겹이 포위되고 수하 장사들은 점점 흩어져 달아난다.
어느새 황혼에 이르러 관공이 사방의 산들 위를 바라보니, 모두 형주의 사병들인데 서로 형과 아우를 부르고, 아들과 아비를 찾으며 함 성이 멎지 않는다. 군심이 모조리 변하여, 모두 소리를 듣고 가버린다. 관공이 큰소리로 제지하지만 멈추지 않는다. 따르는 사람이 겨우 3백 남짓이다.
3경(밤11시에서 1시) 무렵에 정동쪽에서 함성이 잇따른다. 바로 관평과 요화가 양 갈래에서 병력을 이끌고 두터운 포위에 돌입해 관공을 구출한다. 관평이 고한다.
“군심이 어지럽습니다. 성지(성읍/ 도시)에 잠시 주둔하며 구원병을 기다려야겠습니다. 맥성이 비록 작지만 주둔할 만합니다.”
관공이 그 말을 따라 나머지 군대를 독려해 맥성으로 간다. 병력을 나눠 4개 성문을 굳게 지키며 장사들을 불러 상의한다. 조루가 말한다 .
“이곳 가까이 상용이 있는데 현재 유봉과 맹달이 그곳에서 수비하고 있습니다. 어서 사람을 보내 구원병을 요청하십시오. 그들 군마가 와서 돕고, 이로써 서천의 대군을 기다리면 군심은 저절로 안정됩니다.”
이렇게 의논하는데 오병들이 벌써 몰려와서 맥성을 사방으로 포위했다 한다. 관공이 묻는다.
“누가 용감히 포위를 돌파해 상용으로 가서 구원을 청하겠소?”
요화가 말한다.
“제가 가겠습니다.”
관평이 말한다.
“내가 그대를 호송해 중위(두터운 포위망)를 뚫고 나가게 하겠소.”
관공이 즉시 글을 다듬어 요화 몸속에 숨기게 한다. 요화가 배불리 먹고 말에 올라 성문을 열고 나간다. 곧바로 동오 장수 정봉이 막아서 나, 관평이 힘껏 적병을 충살 衝殺한다. 정봉이 패주하자 요화가 그 틈에 중위를 뚫고 상용으로 간다. 관평이 성으로 들어와 굳게 지키며 출전하지 않는다.
한편, 유봉과 맹달이 직접 상용을 취했을 때 그곳 태수 신탐이 사람들을 이끌고 투항했었다. 이에 한중왕이 유봉에게 부장군의 작위를 더하고 맹달과 함께 상용을 지키게 했다. 그날 관공의 패전을 듣고 두 사람이 상의하는데, 요화가 왔다 한다. 유봉이 불러들여 묻자 요화 가 말한다.
“관공께서 패전하셔 맥성에 포위되어 매우 위급합니다. 촉중에서 구원병이 오더라도 단석(아침저녁/ 단기간)에 오지 못합니다. 특별히 저를 시켜 포위를 돌파해 이곳으로 구원을 청하게 하셨습니다. 바라옵건대 두 장군께서 어서 상용의 병력을 일으켜 이러한 위기에서 구 해주십시오. 조금이라도 늦으면 관공께서 반드시 잡히게 됩니다.”
“장군은 잠시 쉬시오. 내게 토의할 시간을 주시오.”
요화가 관역에서 쉬며, 오로지 발병(출병)을 기다릴 따름이다. 유봉이 맹달에게 말한다.
“숙부께서 곤경에 처하셨는데 어찌해야겠소?”
“동오 병력은 정예하고 장수들은 용맹합니다. 게다가 형주 9군도 모두 이미 그들에게 속하고 겨우 맥성만 남았으니 바로 탄환지지 彈丸 之地(사방이 적으로 포위된 좁은 땅)입니다. 또한 듣자오니, 조조가 친히 4, 5십만 대군을 지휘해 마파에 주둔하고 있습니다. 생각컨대, 우리 산성의 병력이 어찌 그들 양쪽 강병을 대적하겠습니까? 함부로 대적할 수 없습니다.”
“나도 그것은 알고 있소. 그러나 관공은 바로 내 숙부이거늘 어찌 차마 좌시하며 구원하지 않겠소?”
맹달이 웃으며 말한다.
“장군께서 관공을 숙부로 여기시나, 관공은 아직 장군을 조카로 여기지 않는 게 아닐까 두렵습니다. 제가 듣자오니, 한중왕께서 처음에 장군을 양자로 받아들이실 때, 관공은 바로 싫어했습니다. 그 뒤 한중왕께서 즉위하시며 후사를 세우고자 공명에게 물었습니다. 공명은, 이것은 집안 일이오니 관, 장(관우와 장비)에게 물으면 됩니다, 라고 하였습니다. 한중왕이 곧 사람을 형주로 보내 관공에게 물었습니 다. 관공은 장군이 바로 명령지자 螟蛉之子(양자)라 참람되게 자리에 오를 수 없다며, 한중왕께 장군을 멀리 이곳 상용 산성으로 보내 후환을 막으라 권했습니다. 이런 일은 사람마다 다 알거늘 장군께서 도리어 모르십니까? 어찌 오늘 고고 沾沾하게(경망스럽게/ 잘난듯 이) 숙부와 조카의 의리로써 모험하며 가벼이 움직이시겠습니까?”
“그대 말씀이 비록 옳지만, 어떤 말로 거부해야겠소?”
“이곳 산성은 귀부한지 얼마 안 되니 민심이 아직 안정되지 않아, 갑작스레 출병하면 오히려 지키고 있던 곳도 빼앗길까 두렵다고만 말 씀하십시오.”
유봉이 그말을 따라, 다음날 요화가 오자 말한다.
“이곳 산성은 귀부한지 얼마 안 돼 아직 병력을 나눠 구할 수 없소.”
요화가 깜짝 놀라 머리를 바닥에 조아리며 말한다.
“이러시면 관공께서 끝장이십니다!”
맹달이 말한다.
“우리가 오늘 가본들, 한잔의 물로써 어찌 한수레의 장작에 붙은 불을 끄겠소? 장군은 어서 돌아가, 조용히 촉병을 기다리는 것이 지당하 오.”
요화가 몹시 서럽게 울며 구원해달라고 매달리나, 유봉과 맹달은 소매를 털며 들어가버린다. 요화가 일이 이뤄지지 못할 것을 깨닫고, 결국 말에 올라 크게 욕하며 성문을 나서 성도로 간다.
한편, 관공은 맥성에 머물며 상용 병력이 오기를 애타게 바라나, 전혀 움직임이 안 보인다. 수하 겨우 5, 6백 인이 있는데 태반이 상처 입 었다. 성중에 식량이 없어 몹시 고초를 겪는다. 그런데 성 아래에서 한 사람이 화살을 쏘지 말라고 하면서, 군후께 할 말이 있다 한다. 관공이 들어오게 해서, 물어보니 바로 제갈근이다. 인사를 마치고 차를 마시자 제갈근이 말한다.
“이제 오후(손권)의 명을 받자와, 일부러 장군을 설득하고자 왔습니다. 예로부터 이르기를, 시무 時務를 아는 사람이 준걸이라 했습니다. 지금 장군께서 다스리시던 한상 漢上 9군도 모두 이미 타인에게 귀속됐습니다. 겨우 외로운 성 한곳만 남아, 안으로 아무런 식량도 없고, 밖으로 아무런 구원병이 없으니 몹시 위급합니다. 장군께서 어찌 제가 드리는 말씀을 따르지 않으시겠습니까? 오후께 귀순하시어 형양 지방을 다시 장악하시면 가히 가권(집안식구)을 보전하실 수 있사옵니다. 아무쪼록 군후께서 심사숙고해주십시오.”
관공이 정색하고 말한다.
“나는 해량의 일개 무부였으나 우리 주공께서 수족처럼 대해주시는 은혜를 입었소. 어찌 의리를 저버리고 적국에 투항하겠소? 성이 격파되면 죽음이 있을 뿐이니, 옥 玉은 부술 수 있으나 그 깨끗함을 바꿀 수 없고, 대나무는 태울 수 있으나 그 절개는 훼손할 수 없는 것 이오. 몸은 비록 죽더라도 이름은 죽백(역사책)에 전할 것이오. 그대는 여러 말 말고, 어서 성을 나가시오. 나는 손권과 한바탕 죽기로 싸 우겠소!”
“오후께서 군후와 더불어 진진지호 秦晉之好 (춘추시대 두 나라가 혼인으로써 동맹을 맺은 것)를 맺어 힘을 합쳐 조조를 격파해 함께 한 실을 바로잡고자 하시지 다른 뜻은 없습니다. 군후께서 어찌 이토록 고집을 부리십니까?”
말을 미처 마치기 전에 관평이 검을 뽑아 앞으로 나오며 제갈근을 참하려 한다. 관공이 제지하며 말한다.
“그의 아우 공명이 촉중에 있으며 네 백부를 모시고 있다. 지금 그를 죽이면 형제의 정을 상하는 것이다.”
곧 좌우의 사람들에게 명해 제갈근을 축출한다. 제갈근이 얼굴 가득 처참해, 말에 올라 성문을 나가 오후를 만나 말한다.
“관공의 마음이 철석 같아 설득할 수 없습니다.”
오후 손권이 말한다.
“참으로 충신이오! 이렇다면 어찌해야겠소?”
여범이 말한다.
“청하옵건대 제가 그 휴구 休咎(길흉화복)를 점쳐보겠습니다.”
손권이 즉시 점치도록 명한다. 여범이 점대(점치는 댓가지)를 뽑아 형상을 알아보니, 바로 ‘지수사괘 地水師卦’다. 게다가 현무 玄武(북 방의 신/ 거북/ 거북과 뱀)가 응하여, 적인 敵人이 멀리 달아날 점괘다. 손권이 여몽에게 묻는다.
“점괘에 적인이 멀리 달아날 것이라는데 경은 어떤 계책으로 그를 잡겠소?”
여몽이 웃으며 말한다.
“괘상 卦象(점괘가 나타내는 길흉의 상)은 제가 바라던 대로입니다. 관공이 비록 하늘로 솟아오를 날개를 가진들, 제 나망 羅網(새잡이그 물)을 빠져나가지 못합니다!”
용이 구렁에서 노닐다가 새우의 장난을 만나고
봉황이 새장에 들어가 새들의 업신여김을 당하네
과연 여몽의 계책은 어떤 것일까? 다음 회에 풀리리다.
다음 회
"무릇 천리마 하루 천리를 가지만 느린 말도 열흘이면 역시 간다 夫驥一日而千里, 駑馬十駕, 則亦及之矣" (순자 荀子)
나관중 羅貫中이 쓰고 모종강 毛宗崗이 개수한 삼국연의 三國演義 원본을 한문-한글 대역 對譯으로 번역해봤습니다.
2009년부터 7년간 번역해 제 블로그에 올린 걸 홈페이지로 만들었습니다.
정만국(daramzui@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