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문삼국지 原文三國志

앞 회

제77회 관공의 혼령이 옥천산에서 나타나고 조조가 낙양성에서 귀신에 홀린다

    한편 손권이 여몽에게 계책을 구하자 여몽이 말한다.

    “제가 헤아리니, 관모 關某의 병력이 적어 틀림없이 큰 길을 따라서 달아나지는 않을 것입니다. 맥성 정북쪽에 험준한 작은 길이 있는데 보나마나 이 길을 따라 갈 것입니다. 주연에게 정병 5천을 이끌고 맥성 북쪽 2십 리에 매복하라 하십시오. 저들 군대가 오면 맞붙어 싸우지 말고 오로지 뒤쫓아 엄살해야 합니다. 저들 군대는 정녕코 아무 싸울 뜻이 없어 틀림없이 임저 臨沮(땅이름)로 달아날 것입니다. 다시 반장을 시켜 정병 5백을 이끌고 임저의 외진 산속 좁은 길에 매복하면 관모를 잡을 수 있습니다. 이제 장사들을 보내서 성문마다 공타하되 오로지 북문을 비워두고 그들이 빠져나오기를 기다려야 합니다.”

    손권이 계책을 듣고 여범에게 다시 점치도록 시킨다. 점괘가 나오자 여범이 고한다.

    “이 점괘에 따르면 적인이 서북쪽으로 달아날 것이라 합니다. 오늘밤 해시 亥時(밤9-11시)에 분명히 사로잡히겠습니다.”

    손권이 기뻐하며 곧 주연과 반장에게 명해 두 무리 정병을 이끌고 제각기 군령대로 매복을 마친다.

    한편, 관공이 맥성에서 마보군병(기병과 보병)을 점검하니 겨우 3백 사람 남짓 남아 있다. 더구나 양초(식량과 말사료)도 떨어졌다. 이날 밤 성밖 오병들이 각각의 병사 성명을 부르니 성을 넘어 달아나는 이들이 매우 많다. 구원병도 올 기미가 없다. 관공 심중에 아무 계책이 없어 왕보에게 말한다.

    “내 지난날 공의 말씀을 듣지 않은 게 후회스럽구려! 오늘 위급하니 장차 어찌해야겠소?”

    왕보가 소리내 울며 말한다.

    “오늘의 일은 비록 자아 子牙(강태공)가 다시 태어난들 역시 아무 계책을 쓸 수 없습니다.”

    조루가 말한다.

    “상용의 구원병이 오지 않음은 유봉과 맹달이 안병부동(관망하며 병력을 움직이지 않음)해서입니다. 어찌 이 고립된 성을 버리고 서천으로 달아나 병력을 재정비해 회복을 도모하지 않겠습니까?”

    관공이 말한다.

    “나 역시 그러고자 하오.”

    곧 성을 올라가 관찰하니 북문 밖 적군이 많지 않아 이곳 성의 거주민에게 묻는다.

    “여기서 북쪽으로 가며 지세가 어떻소?”

    “이곳으로 가면 모두 외진 산속 좁은 길인데 서천으로 통합니다.”

    “오늘밤 이 길로 가야겠소.”

    왕보가 간언한다.

    “좁은 길은 매복이 있을 테니 큰 길로 가야 합니다.”

    “비록 매복이 있더라도 내 어찌 두려우랴!”

    즉시 마보군관들은 엄정히 행장을 꾸려 출성을 준비하라고 명령을 하달한다.

    왕보가 울며 말한다.

    “군후께서 길을 가시며 조심해서 보중 保重하소서! 저는 부졸 백여 인과 더불어 죽을 각오로 이곳 성을 지키겠습니다. 성이 격파될지언 정 저는 항복치 않겠습니다! 오로지 군후께서 조속히 돌아오셔서 구원하기를 바라겠나이다!”

    관공도 흐느끼며 작별한다. 마침내 주창과 왕보를 남겨 함께 맥성을 지키게 한다. 관공 스스로 관평, 조루와 더불어 패잔병 2백 남짓을 이끌고 북문에서 돌출한다. 관공이 칼을 비껴들고 전진한다. 행군이 초경(밤 7-9시)이 지나, 대략 2십여 리를 가니 산속 요처 凹處(우묵 들어간 곳)에서 징소리 북소리 일제히 울리고 함성이 크게 울리며 한무리 군마가 나온다. 선두의 대장 주연이 말을 몰며 창을 꼬나들고 외친다.

    “운장은 달아나지 마라! 어서 항복하면 죽음만은 면하리라!”

    관공이 크게 노해 말에 박차를 가해 칼을 휘두르며 달려든다. 주연이 곧 달아나니 관공이 기세를 타고 추격한다. 한바탕 북소리 울리더 니 사하(사방)에서 복병이 우루루 일어난다. 관공이 감히 싸우지 못해 임저 臨沮의 좁은 길로 달아난다. 주연이 병력을 이끌고 엄살 掩殺 (습격)한다.

    관공을 추종하는 병력이 점점 희소해진다. 4, 5리를 못 달아나, 앞쪽에서 함성이 또다시 진동하고 불빛이 크게 치솟는다. 반장이 말을 내 달려 칼을 춤추듯 휘두르며 거세게 달려든다. 관공이 빙빙 칼을 돌리며 맞이한다. 겨우 3합만에 반장이 패주하나 관공은 감히 싸움에 연 연치 못하고 서둘러 산길을 따라 달아난다. 배후에서 관평이 뒤따라와서 조루는 이미 난전 중에 죽었다 보고한다. 관공이 비황 悲惶 (슬 프고 두려움)을 이기지 못하며 관평을 시켜 배후를 차단하고 스스로 앞에서 길을 개척하나 따라오는 사람은 열 사람 남짓이다. 행렬이 결석 決石(땅이름)에 이르니 양쪽이 모두 산인데 산둘레가 온통 노위 蘆葦(갈대)와 패초(마른풀)이고 ��목이 빽빽하다. 때는 이미 오경 이 다 지났다.

    달아나고 있는데 한바탕 함성이 일더니 양쪽에서 복병이 모조리 튀어나와 긴 갈고리와 투삭 套索(올가미)을 일제히 들어 먼저 관공이 타 고 있는 말을 얽어매어 넘어뜨린다. 관공이 몸을 꼬꾸라져 낙마하자 반장의 부장 마충이 사로잡는다. 부친이 잡힌 것을 알고 관평이 부 리나케 구하러 오지만 배후에서 반장과 주연이 병력을 인솔해 몰려와서 관평을 사방에서 에워싼다. 관평 외로이 홀로 싸우다 힘이 다해 역시 사로잡힌다. 해뜰 무렵에 이르러 관공 부자가 사로잡힌 것을 전해들은 손권이 크게 기뻐하며 장수들을 장중으로 불러모은다.

    잠시뒤 관공을 족옹 簇擁(많이 사람들이 달라붙어 지킴)하며 마충이 당도하자 손권이 말한다.

    “고 孤는 오래도록 장군의 성덕을 연모하며 진진지호 秦晉之好(제후 사이의 결혼 동맹)를 맺기를 바랐거늘 어찌 거절하기만 하셨소? 공 께서 평석 平昔(늘/ 언제나) 스스로 천하무적이라 여기셨으나 오늘 무슨 까닭에 내게 사로잡히셨소? 장군께서 오늘 이 손권에게 귀순하 시지 않겠소?”

    관공이 성난 목소리로 말한다.

    “새파란 눈 어린 놈아! 푸른 수염 쥐새끼야! 나는 유황숙과 더불어 도원에서 결의형제하며 한실(한나라 황실)을 바로잡을 것을 맹서했거 늘 어찌 너 같은 반한지적(한나라 역적)과 섞이겠냐! 내 이제 간계에 빠져 죽음이 있을 뿐이니 어찌 여러 말 하겠냐!”

    손권이 관리들을 돌아보며 말한다.

    “운장은 천하호걸이니 고는 몹시 그를 아끼오. 이제 예를 갖춰 대하며 투항을 권하고자 하는데 어떻겠소?”

    주부 좌함이 말한다.

    “불가하옵니다. 지난날 조조가 이 사람을 얻었을 때 제후에 봉하고 작위를 내리며 사흘마다 작은 연회, 닷새마다 큰 연회를 베풀고, 말을 타거나 내릴 때마다 금을 제공했습니다. 이렇게 은혜와 예를 베풀었으나 결국 그를 붙잡아두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그가 관문의 장수들을 죽이고 가버린 것을 전헤들었을 뿐입니다. 마침내 오늘날 조조가 그에게 핍박 받더니 하마터면 도읍을 옮겨 그 예봉을 피하려 할 뻔 했습니다. 이제 주공께서 그를 사로잡으시고도 즉시 제거하지 않아 후환을 남길까 두렵사옵니다."

    손권이 한참을 깊이 생각하더니 말한다.

    "그 말이 맞소."

    마침내 끌어내라 명한다. 이에 관공 부자가 모두 살해 당한다. 때는 건안 24년 겨울 12월이다. 관공이 그 나이 58세에 졸한 것이다. 후인 이 시를 지어 기렸다.

    한나라 말기 그 재주 무적이니
    관운장 홀로 무리 가운데 우뚝하네
    신 같은 위엄 능히 무력을 떨치고
    학자처럼 우아하고 학문도 아는구나
    그 마음 하늘의 태양처럼 빛나고
    춘추에 전할 충의는 높은 구름 같구나
    찬란히 만고에 전할 테니
    그 옛날 *삼분에서 으뜸일 뿐이랴!

    또 시를 지었다.

    인걸들은 오로지 옛 해량을 추억하고
    사민들은 앞다퉈 한나라 운장을 숭배하네
    도원의 그 어느날 형과 아우들이
    천추에 제사 올리는 황제와 왕이 되었네
    기운은 거센 바람 우레 같이 필적할 자 없고
    지조는 빛나는 해와 달처럼 길이 전하네
    지금껏 모시는 *묘모가 천하에 가득하고
    저녁마다 고목에 까마귀 깃든지 몇몇 해리오

    관공이 죽고나서 그가 타던 적토마를 마충이 붙잡아 손권에게 바친다. 손권이 즉시 마충에게 하사해 타게 한다. 그 말이 며칠 초료(말먹 이풀)를 먹지 않더니 죽는다.

    한편 왕보가 맥성에 있는데 갑자기 뼈와 살이 몹시 떨려 주창에게 묻는다.

    “어젯밤 주공께서 온몸이 피에 젖어 제 앞에 나타나셨소. 급히 여쭈다 문득 놀라 깨어났소. 무슨 길흉을 나타내는지 모르겠소?”

    이렇게 이야기하는 사이 급보가 들어오니, 오병들이 성 아래에서 관공 부자의 수급(베어낸 머리)을 들고 초안(투항을 권유함)한다는 것 이다. 왕보와 주창이 크게 놀라 급히 성에 올라 바라보니 과연 관공 부자의 수급이다. 왕보가 큰 소리로 외치더니 성에서 뛰어내려 죽는 다. 주창도 자문 自刎(스스로 찌르거나 베어 죽음)해 죽는다. 이에 맥성도 동오에 넘어간다. 한편 관공의 영혼 英魂(훌륭한 사람의 혼)이 흩어지지 못하고 탕탕유유 蕩蕩悠悠(정처 없이 헤맴)하다가 곧바로 한곳에 이르니 바로 형문주 당양현의 어느 산인데 그 이름 옥천산이 다. 산 위에 노승이 한 사람 있는데 법명이 보정이다. 원래 사수관 汜水關 진국사 鎮國寺의 장로였다. 그뒤 천하를 구름처럼 떠돌다 이곳 에 와서 산수가 빼어난 것을 보고 풀을 엮어서 암자를 만들었다. 날마다 좌선하며 도를 참구하였다. 그 신변에는 어린 행자 하나만이 있 어서 이리저리 탁발하며 밥을 얻어와서 살아갔다.

    이날밤 달이 빛나고 바람이 맑은데 3경(밤11-1시)이 지나 보정이 암자 안에서 가만히 좌선하고 있다. 문득 공중에서 누군가 크게 부르는 것이 들린다.

    “내 머리를 돌려주오!”

    보정이 얼굴을 들어 체관 諦觀(관찰)하니 공중에 한 사람이 보일 따름인데 적토마를 타고 청룡도를 들고 있다. 그 왼쪽에 얼굴이 하얀 장 군이, 오른쪽에 얼굴이 검고 수염이 구불구불한 사람이 따르고 있다. 일제히 구름꼭대기에서 내려와 옥천산의 정상에 내려온다. 보정은 그가 관우인 것을 깨닫고 곧 손에 쥔 주미 麈尾(먼지떨이)로 문을 두드리며 말한다.

    “운장께서 어디 계십니까?”

    관공의 영혼이 깨닫고 즉시 말에서 내려 바람을 타고 암자 앞으로 내려와 차수 叉手(가슴 앞에서 두손을 교차해 예를 표하는 것)하며 묻 는다,

    “법사는 누구시오? 법호(스님의 법명)를 알려주시오,”

    “노승 보정입니다. 지난날 사수관 진국사에서 제가 군후를 만났는데 오늘 모르시겠습니까?”

    “구해주신 은혜를 입어, 고마움을 아로새겨 잊지 못했소. 지금 제가 이미 재앙을 만나 죽어 바라건대 맑은 가르침을 구하오니, 미로에서 벗어나게 해주시오.”

    “어제는 그른 것이 오늘은 옳은 것이 되니 아무 것도 논하지 말고, 뒤의 결과나 앞의 원인도 피차 틀린 것이 없습니다. 이제 장군께서 여 몽에게 해를 입어 큰 소리로 내 머리를 돌려주라고 하시지만 안량과 문추, 5관의 여섯 장수 등 많은 사람의 머리는 또한 누구에게 찾아야 겠습니까?”

    이에 관공이 문득 크게 깨달아 고개 숙여 절을 올리며 가르침에 귀의 皈依하고 떠난다. 그뒤 때때로 옥천산에서 현성 顯聖해 백성들을 지켜준다. 시골사람들이 그 은덕에 감격해 산정상에 묘당을 만들어 사시사철 제를 올린다. 뒷날 누군가 그 묘당에서 1연을 따와서 읊었 다.

    적면 赤面에 적심 赤心을 간직하고 적토 赤兔 타고 바람 따라
    내달릴 때에도 적제 赤帝를 잊은 적 없었고
    청등 青燈으로 청사 青史를 살펴봐도 청룡언월 青龍偃月 짚고
    어디에서도 청천 青天 아래 부끄럽지 않았네

    한편 손권은 관공을 살해하고서 마침내 형양(형주와 양양)의 땅을 몰수하고 삼군을 포상하고 호궤한다. 연회를 베풀어 장수들을 크게 모아 공로를 경하한다. 여몽을 상석에 앉히고 뭇 장수를 돌아보며 말한다.

    “고가 오래도록 형주를 얻지 못하다가 이제 손바닥에 침 뱉듯이 쉽게 얻으니 모두 자명(여몽)의 공이오.”

    여몽이 거듭 공손히 사례한다. 손권이 말한다.

    “지난날 주랑(주유)의 웅략(비범한 지략)이 과인(남다름)해서 적벽에서 조조를 격파했으나 불행히도 요절해 노자경(노숙)이 대신했소. 자경이 처음 고를 만나 곧 제왕의 대략을 제시하니 첫째 쾌거였소. 조조가 동하 東下(동쪽으로 움직임/ 동쪽으로 쳐들어옴)하자 사람들 모두 고에게 투항을 권했으나 자경이 홀로 고에게 공근(주유)을 불러 거꾸로 공격하도록 권했으니 둘째 쾌거였소. 다만 내게 형주를 유 비에게 주도록 권한 것이 그의 유일한 실책이었소. 이제 자명이 계책을 세워 단숨에 형주를 취하니 자경과 주랑을 크게 능가하는 것이오 .”

    이에 친히 술을 따라 여몽에게 내린다. 여몽이 술을 받아 마시려다 갑자기 술잔을 바닥에 던지더니 손권을 꽉 붙잡고 소리높여 마구 욕 한다.

    “파란 눈 어린 놈아! 푸른 수염 쥐새끼야! 아직도 나를 못 알아보겠냐!”

    장수들이 몹시 놀라 급히 구출하려는데 여몽이 손권을 밀어뜨린다. 성큼성큼 전진해 손권의 자리에 앉아 두 눈썹을 치켜세우고 눈을 부 라리며 크게 꾸짖는다.

    “나는 황건적의 난 이래로 천하를 종횡한지 3십여 년이다. 이제 네가 하루아침에 간계로써 나를 도모했으니 내 살아서 너의 고기를 씹어 먹지 못하지만 죽어서라도 여몽 도적놈의 혼을 뒤쫓겠다! 나는 바로 한수정후 관운장이다!”

    손권이 크게 놀라 황망히 대소장사(지위가 높고 낮은 장수와 사병/ 여기서는 각급 문무관리)를 거느리고 모두 하배 下拜(무릎꿇고 절을 올림)한다. 그런데 여몽이 바닥으로 쓰러지며 칠규 七竅(몸의 일곱구멍 즉 눈 코 귀 입의 구멍들)에서 피를 흘리며 숨진다. 장수들이 보 더니 무서워 두려워하지 않는 이 없다. 손권이 여몽의 시수를 거둬 관을 갖춰 안장하고 남군태수 南郡太守 잔릉후 潺陵侯를 추증한다. 그 아들 여패 呂霸에게 습작 襲爵(부친의 벼슬을 물려받음)을 명한다. 손권이 이로부터 관공의 일에 마음이 움직여 놀라워 마지 않는다. 그런데 갑자기 장소가 건업에서 찾아왔다고 한다. 손권이 불려들여 묻자 장소가 말한다.

    “이제 주공께서 관공 부자를 죽였으니 강동에 재앙이 머지않았습니다. 이 사람은 유비와 더불어 도원결의할 때 생사를 같이할 것을 맹서 했습니다. 이제 유비가 양천(서천과 동천)의 병력을 가진데다 제갈량의 지략, 장비, 황충, 마초의 용맹을 겸하고 있습니다. 유비가 만약 운장 부자의 살해를 안다면 반드시 경국지병(온나라의 총동원 병력)을 일으켜 온힘을 다해 복수에 나설 것입니다. 아무래도 동오가 대적 하기 어려울까 두렵사옵니다.”

    손권이 이를 듣고 크게 놀라 발을 동동 구르며 말한다.

    “고가 잘 따져보지 못했구려! 이렇다면 어찌해야겠소?”

    “주공께서 걱정하실 것 없습니다. 제게 계책이 하나 있사오니 서촉의 병력이 동오를 침범하지 못하게 만들어 형주가 반석처럼 안전할 것 입니다.”

    손권이 무슨 계책인지 묻자 장소가 말한다.

    “이제 조조가 백만대군을 가지고 화하(중원)를 범처럼 노려보니, 유비가 서둘러 복수에 나선다면, 반드시 조조와 화평을 맺을 것입니다. 두쪽에서 병력을 연합해서 온다면 동오는 위태해집니다. 차라리 관공의 수급(잘린 머리)을 조조에게 넘겨주면, 유비는 이것이 조조가 시킨 것임을 분명히 깨달아 반드시 조조를 몹시 미워할 것입니다. 서촉의 병력이 동오를 향하지 않고 위나라로 향하게 되니, 우리는 그저 그 승부를 살펴보며 어부지리를 얻을 수 있습니다. 이것이 상책입니다.”

    손권이 그말을 따라 곧이어 사자를 시켜 나무상자에다 관공의 수급을 넣어 그날밤 조조에게 보낸다. 이때 조조는 마피 摩陂에서 군대를 거 둬서 낙양으로 되돌아가던 중이다. 동오에서 관공의 수급을 보내온 것을 듣더니 기뻐하며 말한다.

    “운장이 죽었다니 이제 밤에 편히 누워 잘 수 있겠소.”

    그런데 아래에서 한 사람이 나오며 말한다.

    “이것은 바로 동오에서 재앙을 떠넘기는 계략입니다.”

    조조가 바라보니 바로 주부 사마의다. 조조가 까닭을 묻자 사마의가 말한다.

    “지난날 유, 관, 장 세 사람이 도원결의를 할 때, 생사를 같이할 것을 맹서했습니다. 이제 동오가 관공을 해치고 그 복수가 두려운 나머지 그 수급을 대왕께 바치는 것입니다. 유비로 하여금 노여움을 대왕께 옮겨, 동오가 아니라 위나라를 치게 만들고 그들은 도리어 어부지리 를 노려 일을 도모하는 것일 따름입니다.”

    “중달(사마의)의 말씀이 옳소. 고는 무슨 계책으로 풀어야겠소?”

    “이 일은 아주 쉽습니다. 대왕께서 관공의 수급을, 향나무로 깎아 만든 몸에 붙여서 대신지례 大臣之禮로써 안장해주십시오. 유비가 이 를 알면 반드시 손권을 몹시 미워해 힘을 다해 남쪽을 정벌할 것입니다. 우리는 그 승부를 살피며, 서촉이 이기면 동오를 공격하고, 동오 가 이기면 서촉을 공격하면 됩니다. 두곳 가운데 한곳을 얻는다면 나머지 한곳 역시 오래가지 못하옵니다.”

    조조가 크게 기뻐하며 그 계책을 따라 곧 동오의 사자를 불러들인다. 사자가 나무상자를 바쳐 조조가 상자를 열어보니 관공의 얼굴이 평 소 같다. 조조가 웃으며 말한다.

    “운장 공, 그간 별고 없으셨소?”

    그 말이 미처 끝나기 전에 관공의 입이 벌어지고 눈이 움직이고 수염과 머리카락이 모두 곤두선다. 조조가 놀라 쓰러진다. 관리들이 급 히 구하자 한참 지나서야 깨어나 관리들을 돌아보며 말한다.

    “관장군은 참으로 천신 天神이오!”

    동오 사자도 관공의 혼백이 몸에 붙자, 갑자기 손권이 여몽의 말을 따랐던 것을 욕하며 조조에게 고자질한다. 조조가 더욱 무섭고 두려 워 곧 희생과 단술을 마련해 제사를 지내며, 침향목을 깎아 몸을 만들어 왕후(왕과 제후)의 예로서 낙양성 남문 밖에 묻는다. 대소관원 大小官員들에게 송빈 送殯(장례에 참여)을 명하고, 조조 스스로 제사에서 절을 올리고, 관리를 보내 묘지를 지키게 한다. 그리고 즉시 동 오의 사자를 강동으로 되돌려 보낸다.

    한편, 한중왕(유비)이 동천에서 성도로 돌아오자 법정이 상주한다.

    “왕상의 선부인께서 별세하시고 손부인께서도 남쪽에서 아직껏 돌아오실 기미가 없습니다. 인륜의 도리를 폐할 수 없사오니 왕비를 맞으셔서 내정 內政을 돕게 하옵소서.”

    한중왕이 따르자 법정이 상주한다.

    “오의의 누이가 아름답고 어집니다. 일찍이 어느 상자(관상가)가 관상을 보더니 훗날 크게 귀한 몸이 될 것이라 하였습니다. 지난날 유언의 아들 유모와 약혼했으나 유모가 일찍 죽었습니다. 그녀는 이제까지 과부로 지내니 대왕께서 왕비를 맞이하소서.”

    “유모는 나와 같은 종친이니 도리에 어긋나오.”

    “친소관계를 논해본다면 어찌 진문공이 회영 懷嬴(진양공의 부인)과 결혼한 것과 다르겠습니까?”

    이에 한중왕이 윤허하여 오씨를 왕비로 맞아들여 두 아들을 낳으니 첫째가 유영 '공수',둘째가 유리 '봉효'이다.

    한편, 동서 양천에서 백성은 안정되고 나라는 부강하고, 농사는 풍년이다. 그런데 누군가 형주에서 오더니, 관공이 동오의 구혼을 매몰차게 거절했다고 한다. 공명이 말한다.

    “형주가 위급하게 됐습니다. 사람을 보내어 관공을 대신고 관공을 불러들여야 합니다.”

    상의하고 있는데, 형주에서 승첩을 알리는 사자가 끊임없이 찾아온다. 하루가 안 지나, 관흥이 도착해 위나라 7군을 수몰한 일을 상세히 말한다. 또다시 말을 달려와서, 관공이 강변에 돈대를 많이 설치해 방어가 몹시 세밀하여 만에 하나도 실수가 없을 것이라 말한다. 이에 현덕이 방심한다.

    그런데 어느날 문득 현덕은 온몸의 살이 떨리고 걷거나 앉아도 불안하다. 밤에도 편히 잠들 수 없어 일어나 내실에 앉아 촛불 가까이 책을 보는데 신사 神思(정신)가 혼미해져 방석에 기대어 눕는다. 실내에 한바탕 서늘한 바람이 불더니 등불이 깜빡인다. 머리를 치켜드니 등불 아래 누군가 서 있다. 현덕이 묻는다.

    “그대는 누구라서 한밤중에 내실까지 찾아왔소?”

    그 사람이 대답하지 않아 현덕이 괴이하게 여겨 스스로 일어나 바라보니, 바로 관공이 등잔 그림자 아래에서 움직이며 숨으려 한다. 현 덕이 말한다.

    “현제는 그 동안 무양하였는가! 야심한데 이렇게 찾아오다니 필시 큰 일이 있겠구나. 나와 그대는 골육 같은 정이 있는데 어째서 회피하 는가?”

    관공이 울며 고한다.

    “바라건대 형님께서 병력을 일으켜 아우의 원한을 풀어주시오.”

    말을 마치자 서늘한 바람이 몰아치더니 관공이 보이지 않는다. 현덕이 문득 놀라 깨어나니 한바탕 꿈이다. 때는 정각 삼고 三鼓(3경)이 다. 현덕이 몹시 의심스러워 급히 전전 前殿(궁궐의 정전)으로 나가서 사람을 시켜 공명을 불러오게 한다. 공명이 들어오자 현덕이 꿈에 서 놀라 깨어난 것을 자세히 말한다. 공명이 말한다.

    “이것은 바로 왕상께서 관공을 깊이 생각하셔서 이런 꿈을 꾸신 것입니다. 자꾸 의심하실 게 못 됩니다.”

    현덕이 거듭 염려하자 공명이 좋은 말로써 풀어준다.

    공명이 작별인사를 하고 나와서 중문 밖에 이르러 허정 許靖과 마주친다. 허정이 말한다.

    “제가 방금 군사 軍師의 부중으로 찾아가 기밀을 하나 알리고자 하였는데 이미 군사께서 입궁하셨다 듣고서 일부러 이곳까지 왔습니다.”

    “무슨 기밀이오.”

    “제가 때마침 외인들의 소문을 들어보니 동오의 여몽이 이미 형주를 습격해 관공이 벌써 살해되었다 합니다. 그래서 일부러 군사께 은밀 히 알려드리려 왔습니다.”

    “내가 밤에 천상(천문현상)을 관측하니 장성(장군별)이 형초에 떨어지는지라 벌써 운장이 틀림없이 재앙을 입은 것을 알았으나 다만 왕상께서 우려하실까 두려워 아직 감히 말씀드리지 못했소.”

    두 사람이 이야기하는 사이 홀연히 전각에서 한 사람이 돌아나와 공명의 옷소매를 붙잡고 말한다.

    “이렇게 흉한 소식을 공께서 어찌 나에게 속였소!”

    공명이 보니 바로 현덕이다. 공명과 허정이 아뢴다.

    “방금 이야기한 것은 모두 전해들은 일이오니 아직 충분히 믿을 게 못됩니다. 바라옵건대 왕상께서 마음을 푸시고 절대 우려하시 마옵소 서.”

    “나와 운장은 생사를 같이하기로 맹서했소. 그를 만약 잃는다면 고가 어찌 홀로 살겠소!”

    공명과 허정이 마음을 풀도록 권하고 있는데 근시(가까이에서 모시는 신하)가 아뢴다.

    “마량과 이적이 왔습니다.”

    현덕이 서둘러 불러들여 묻자 두사람은 형주를 빼앗기고 관공이 패전해 구원을 요청하는 것을 두루 말하며 표장 表章을 바친다. 미처 뜯 어보기도 전에, 시신 侍臣(가까이에서 모시는 신하)이 다시 형주에서 요화가 온 것을 아뢴다. 현덕이 급히 불러들이자 요화가 통곡하며 바닥에서 절을 올리며 유봉과 맹달이 구원병을 보내지 않은 일을 자세히 아뢴다.

    현덕이 크게 놀라 말한다.

    “만약 이렇다면 내 아우는 끝장이다!”

    공명이 말한다,

    “유봉과 맹달이 이토록 무례하다면 그 죄는 주살을 면치 못하리라! 주상께서 마음을 놓으소서. 제가 몸소 일려 一旅(고대 주나라에서 500명의 병사 무리/ 한무리의 병사)의 병력을 이끌고 형주의 위급을 구원하러 가겠습니다.”

    현덕이 흐느끼며 말한다.

    “운장을 잃으면 고는 결코 홀로 살 수 없소! 고가 내일 1군을 이끌고 운장을 구원하러 가겠소!”

    곧 사람을 낭중으로 보내 익덕에게 알리게 하는 한편, 사람들을 보내 인마들을 끌어모은다. 그런데 미처 날이 밝기도 전에 줄줄이 몇 차례 보고가 들어오니, 관공이 밤에 임저로 달아나다 동오의 장수에게 사로잡혀 의롭게 절개를 굽히지 않아 관공 부자가 귀신 歸神(사망 )했다는 것이다. 현덕이 듣고나서 한차례 크게 외치더니 혼절해 땅에 쓰러진다.

    지난날 함께 죽기로 맹서했으니
    차마 오늘 홀로 죽게 할 수 없네!

    현덕의 목숨이 어찌될지 모르겠구나. 다음 회에 풀리리다.

다음 회

"무릇 천리마 하루 천리를 가지만 느린 말도 열흘이면 역시 간다 夫驥一日而千里, 駑馬十駕, 則亦及之矣" (순자 荀子)
나관중 羅貫中이 쓰고 모종강 毛宗崗이 개수한 삼국연의 三國演義 원본을 한문-한글 대역 對譯으로 번역해봤습니다.
2009년부터 7년간 번역해 제 블로그에 올린 걸 홈페이지로 만들었습니다.

정만국(daramzui@gmail.com)